점심은 ‘비빔밥’…아기 키우며 세끼 식사는 호사
이유식을 하다보면 처음엔 먹는 게 반, 흘리는 게 반이다. 낯선 음식에 익숙해지도록 달래고 어르면서 엉망진창 밥 먹이기 전쟁을 시작했다. 난 만날 서연이가 남긴 음식, 흘린 음식을 주워 먹기 바쁘다. 요즘은 심지어 서연이가 땅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 엄마 입에 넣어주는 친절함을(?) 보인다. 어느새 엄마는 ‘그지~그지~땅거지’가 돼가고 있다.
아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식단이 고민이었다. 뭐든 골고루 잘 먹는 아기로 키우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음식과 처음 만나는 이유식을 잘해야 입맛, 밥맛을 알고 그래야 편식하지 않는다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아이들 이유식을 하다보면 양도 적고 잘 먹지도 않아 이것저것 만들기 번거로웠다. 조리 과정도 삶고 데치고 볶는 등 재료의 자연스러운 맛을 잃지 않도록 신경 쓰며 음식을 만들어보았다.
한창 움직이는 서연이를 돌보면서 매일 이유식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배달 이유식 업체를 몇 군데 알아봤다. 몇 곳은 재료부터 만드는 과정을 일일이 다 공개해 위생과 안전에 대한 엄마들의 우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 중 괜찮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배달 이유식을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이는 게 최고다 싶어 그만뒀다.
서연이 먹는 이유식을 나도 함께 먹으며-간을 전혀 하지 않은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음식 맛이라니!-몇 달을 지내니 이젠 제법 어른이 먹는 밥을 먹을 줄 알게 됐다. 어른들 말이 밥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들이 쑥쑥 큰다지 않는가. 그러니 이렇게 신경 써서 해 먹일 수밖에.
하지만 여전히 서연이 밥을 먹이려면 내가 밥 먹는 시간은 놓치기 일쑤다. 서연이 먹는 밥은 이렇게 신경 써서 해 먹이면서 정작 나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내 점심은 매일 비빔밥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밥과 적당히 비벼 눈은 서연이에게 고정시키고 손은 바쁘게 입으로 가져가 그야말로 뚝딱 점심을 해치우기 일쑤다. 어떤 땐 밥그릇을 들고 서서 서연이를 쫓아다니며 먹는다.
그러다보니 온갖 종류의 비빔밥이 탄생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된장 비빔밥, 고추장 비빔밥, 콩자반 비빔밥 등 각종 밑반찬 비빔밥에 남은 찌개 비빔밥, 거기에 달걀 프라이라도 얹는 날은 특비빔밥이다. 그나마 서연이가 매달리지 않으면 단 몇 분 동안이라도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비벼 먹을 재료가 마땅치 않으면 요즘같이 더운 날은 시원하게 찬밥에 물 말아 오이지와 후루룩 한 그릇 비우면 된다. 엄마들이 아기를 키우면서 제대로 된 세끼 식사를 하는 건 호사다. 그런데도 한번 체하지도 않고 살도 빠지지 않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