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貪)이라는 동물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기린이나 용, 이무기나 봉황이라는 동물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탐이라니? 도대체 무슨 동물인가? 머리는 용처럼 돼있고, 뒷부분은 완전히 원숭이 꼬리다. 전신을 감싼 가죽은 기린의 것인데, 그 가죽은 긴 털로 수북하게 덮여 있다. 발굽은 영락없는 소다. 아주 괴상하게 생긴 동물이다.

이런 동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중국 산둥성 곡부의 공부(孔俯)라는 곳에 있다. 공부(孔俯)란 공자 일가가 살던 집과 동네를 일컫는데 공자 이후 76대 손까지 2000년도 넘게 살아온 곳이다. 이 공부에 외채와 안채를 가르는 벽이 있다. 안채에서 나오려면 꼭 거쳐야 하는 이 벽에는 화려한 색깔의 동물이 힘찬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이 걸려있다. 그 동물 이름이 ‘탐’이다. 그 문을 지날 때마다 공자 집안의 사람은 누구든지 “그대여,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마시오(公爺過貪了)”라고 외쳐야 했다고 한다. 이른바 공자 가문의 가훈이었던 셈이다.

그림 속의 탐이라는 동물은 어떤 모습일까? 포효하는 호랑이, 사자 모습인데 뜨거운 태양을 집어삼킬 듯한 자세다. 설명인 즉, 이 탐은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동물인데 과욕을 부려 태양까지 집어삼키려다 그만 자기 자신이 망하고 만 동물이라는 것이다.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공자 집안의 가훈이 담겨있는 일종의 걸개그림인 셈이다.

물론 상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이 동물의 이름을 탐(貪:욕심)이라고 부른 것이 공자 자신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욕심은 곧 사나운 동물과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끝없는 욕심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동물처럼 채워도 채워도 모자람을 느끼는 졸부처럼 결국 그 욕심 때문에 망한다. 탐이라는 욕심의 동물은 결국 태양까지 집어삼키려는 과욕 때문에 그 자신까지 잃고 만다.

공자 사후 20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가르침은 곳곳에 살아 있다. 마오쩌둥 시절에 무던히도 비판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지금은 공자를 가장 중요한 브랜드로 치켜세우고 있는 게 중국이다. 전 세계에 공자학당을 세워 중국의 문화를 자랑하는 첨병으로 삼고 있기조차 하다. 한때는 유교문화가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백안시당한 적도 있었지만 오늘날엔 서구문화에 대응하는 중요한 대안문화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사서삼경 등 깊숙한 지혜가 지천일 터인데, 정작 공자 일가가 자기네 집안에서 걸개그림까지 만들어서 가르치는 게 왜 하필 ‘탐’인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탐 그림이 가장 핵심적인 교육 장소에 걸려있는가? 끝없는 욕심에 대한 경계의 중요성을 그만큼 절실하게 느꼈다는 뜻이 아닐까.

공자가 적극적으로 권한 행위규칙 중 비중 있는 지침이 인(忍:참는다)이라는 것이다. 효도와 우애, 충성과 신의 등 힘든 것을 참고 잘하라는 뜻도 있겠지만, 이 ‘인’ 속에는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참는다’는 의미도 물론 포함됐을 것이다. ‘끝없는 욕심의 유혹에 말려들지 말고 잘 참으라’는 의미의 ‘인’말이다.

예컨대, 보라, 부자일수록 욕심이 거세져서 재산이 많아져도 만족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바닷물 같은 소금물은 마실수록 목이 더 탄다고 하지 않는가. 욕심도 그렇다. 욕심은 채워질수록 그 허기가 더 커진다. 성경에도 있는 것처럼 창고 가득 물건이 쌓이길 바라던 부자가 창고가 다 차자, 새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이 새 창고가 차기를 또 기다린다. 새 창고가 차면 어떨까? 아마 또 다른 새 창고를 지으려 할 것이다. 얼마나 새 창고를 더 지어야 그 욕심이 끝날까. 아마 죽기 전엔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20세기 이후 출세와 성공에 대한 신화가 만발하면서 요즈음의 청소년들은 욕심과 욕망을 미화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욕심은 나쁜 욕심이지만, 돈을 더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바람직한 야망으로 알고 성장했다. 좋은 욕심은 끝도 없이 행사해도 되는 것으로 짐작해 왔다. 어느 누구도 욕심에 제동을 거는 방법과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의 태도이기도 함을 가르치지 않았다.

선한 욕심도 지나치면 결국 나쁜 욕심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남의 사탕을 빼앗아 먹으면 나쁘다는 것은 분명히 알면서도, 아무리 내 사탕이라도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잘 모른다. 선한 욕심도 과하면 자신을 다치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남도 다친다. 어차피 한정된 자원과 기회가 소수에 한정되면 생기는 불가피한 삶의 철칙이다.

공자는 끝없는 욕심을 상징하는 탐이라는 상상의 동물을 길러서 걸개그림에 가두어 놓고, 집안을 드나드는 후손에게 가르쳤다. “탐(貪)과 같은 동물이 되지 말라!”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라.” 공자의 지혜가 다시금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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