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이가 8개월 때였다. 한창 배밀이하고 기어 다니면서 손닿는 것마다 이것저것 만지고 잡아당기고 입에 넣고 그랬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볼일을 보려면 보행기에라도 앉혀놓아야 했다. 그날도 보행기에 앉혀놓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엄마들은 화장실도 못 간다-서연인 보행기를 밀고 가서 베란다 앞에 놓인 화분에서 미니 고무나무 잎을 뜯어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얼른 달려가 하얀 고무나무 즙이 줄줄 흐르고 있는 나뭇잎을 손과 입에서 빼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라도 삼켰을까봐 노심초사하다 입안을 닦아주었다.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아기들은 조용하면 사고치는 것이다. 그 얘길 삼촌한테 했더니 “흠, 유기농 나무니까 괜찮아” 하는 게 아닌가. 하긴 무농약 나뭇잎 눈곱만큼 먹었다고 뭔 큰일이 나는 거야? 아니겠지.

사실 아이를 유기농으로 키우는 게 쉽지 않다. 먹는 거, 입는 거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통 세심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임신 전부터 친환경 농산물과 고기보다 채식 위주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서연이를 갖고 입덧하면서 쇠고기가 당기는 것이었다. 별로 즐기지도 않는 고기가 당기다니.

뱃속 아기가 먹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서연인 뱃속부터 육식을 즐겼으니 채식 위주의 자연 아이(?)와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소아과 의사들은 아기의 영양균형상 육류 섭취를 권장한다. 어쨌든 이유식을 처음 하면서부터 가능하면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긴 했다. 요즘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아토피에 걸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고생하는 과정을 듣고 보면서 아이를 완전 유기농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환경 변화로 예전에 걱정하지 않던 것이 이젠 우리 몸을 병들게 하니 먹을거리가 더 중요해졌다. 또 집안환경, 입을거리도 신경 써야 하고 생활태도, 습관을 전반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어른 한 분이 “우리 아이만 유기농으로 키우면 뭐하냐고. 집에서만 그런다고 아이가 친환경이 되나. 밖에 나가고, 학교 가고 그럼 모두 도루묵인데. 그래서 환경운동 하는 거야.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 엄마도 서연이만 자연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게 아니야. 가능하면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거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은 덜 망가진 지구를 남겨 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거다.

아이~ 좀 쉽게 키우고 싶다. 어려선 환경 때문에 먹는 거 입는 거 다 가려 먹여야 하고 조금 커서부턴 교육문제 때문에 노심초사해야 하니 말이다.

아이 때문에 귀농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주변 친구들이나 이민까지도 감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냥 이 땅에서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거나 잘 입고 만지고 싶은 거 만져보고 흙장난도 하고 그렇게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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