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보호해주지 못해서. 그리고 미안해요. 아무것도 해줄게 없어서.”

이주 여성을 대표해 고 탓티황옥씨에게 추모 편지를 낭독하는 장지연씨(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모임 ‘궁남따이’)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린 베트남 여성에게 용서를 빌었다. ‘우리도 인간이다, 때리지 말아요’ ‘한국 국민이 정의로워지길 소원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이주 여성들의 표정에는 슬픔과 공포, 분노가 섞여 있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주 여성 30여 명은 2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탓티황옥씨의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에 대한 애도와 이주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장씨는 편지를 통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또 일어나고야 말았다”며 “당신이 비참하게 떠난 것을 생각하면 저는 이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기가 두렵다”고 토로했다. 또한 “어리고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을 돕겠다고 먼 땅까지 찾아온 당신을 이렇게 대한 사람들은 사람으로 살 자격이 없다”고 분노하며 “당신이 못다 살다간 이 한국 땅에서 또 다른 탓티황옥씨가 생기지 않도록 남아있는 우리들이 지켜낼 것”을 약속했다.

레티마이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베트남 활동가)씨는 “그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며 “친정은 멀고, 아직 친구도 없는 이주 여성들은 어찌해야 하느냐”고 이주 여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김낸시(필리핀 이주 여성)씨 역시 “한국에 와서 2년간 한국말을 못해 벙어리처럼 지냈는데, 8일 된 여성은 어떻겠느냐”고 분노했다.

이주 여성들은 결혼중개업자와 관리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 무관심한 한국 사회에 대해 성토하며 진상 파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포우러(중국 이주 여성)씨는 “이주 여성을 노예나 보모로 생각해 외출도 못하게 하고 생활비도 안 주며, 상품처럼 매매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비참한 현실을 전하며 “이주 여성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레티마이투씨는 “좋은 이웃이 있었다면, 동사무소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 번이라도 탓티황옥씨를 방문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주 여성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이웃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이주여성 5명은 상대에 대한 정보 제공이 형식적이지 않고 실질적일 것, 허위 정보 제공에 대한 처벌 강화, 이주여성의 상품화 금지 등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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