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스트레스가 있긴 했지만 아이는 계획대로 잘 따라왔다. 남편도 전문가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아이를 칭찬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 많은 시간을 밖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교육을 들으면서 보냈다. 그런데 아이가 5살 때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소리를 했다.
“엄마, 나 오줌 싸도 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충격이었다.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운 걸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로봇으로 만든 걸까?’ 아이의 행동과 말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이는 내게 하루 종일 물었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엄마, 다음에 뭐해? 엄마, 엄마, 엄마….”
정신 차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네가 해야 하는 거 알아서 하라고….”
아이는 힘들어했다.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빙빙 돌면서 알아서 척척 해주던 엄마가 자율성을 주니 버거웠던 모양이다.
습관은 변하기 어렵다. 원래대로 돌아갔다. 물론 마음은 무거웠지만 “내 배로 낳은 내 새끼니까 충분히 사랑을 줘야지” 하고 생각하곤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서 우연한 기회에 부모 교육을 받게 됐다. 두 번째 충격이었다. 첫 시간부터 마음이 아프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난 100점 엄마가 아니라 그냥 완벽한(?) 엄마였다. 완벽한 엄마는 이랬다. 자녀를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아이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보상과 벌로 행동을 컨트롤한다. 부모는 우월하다는 신념 때문에 과잉보호하고, 독선적이며, 아이에게 창피를 줘 무능력하게 만든다.
부모는 완전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아이에게도 완전함을 요구한다. 결점을 들추며, 다른 사람의 생각에 민감해 아이를 좌절감에 빠뜨린다. 자녀가 엄마보다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에 지나치게 자녀에게 몰두한다. 늘 시중들기 때문에 자녀는 사회적 관계를 잘 만들지 못하고 받기만을 기대한다.
내 이야기 같았다. 아이가 어리고 잘 따라와 줘 갈등이 없었을 뿐 문제를 시한폭탄처럼 갖고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교육 수업 내내 “언제까지 내 아이를 캥거루처럼 내 주머니에 넣어 매니저 노릇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학교에서 숙제도 대신 해주고 시험 때는 요점정리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다. 아이가 그걸 바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 대학생들은 엄마가 수강 신청해주고, 교재 사주고, 심지어는 전공 교수한테 전화 걸어 커리큘럼을 물어본다던데….’
“부모 공부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부모가 될 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올바른 부모 역할을 공부해야겠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가 소유물이 아니라 내 몸을 빌려 나온 인격체임을 인식하니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지금 첫째 아이는 사춘기다. 새로운 갈등이 시작됐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예전처럼 두렵거나 회의적이지 않다. 아이의 퉁명스런 말, 봉곳이 솟은 가슴, 반항적인 몸짓 하나하나가 마냥 사랑스럽고 즐겁다. 나도 성장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