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5주년 영화상영회 준비
한 해에도 수십 곳의 제작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영화판에서 15년 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여성 영화제작자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견인하며 3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한 심재명(47) 명필름 대표를 19일 만났다.
명필름은 지난 1995년 8월 창립돼 올해 15주년을 맞는다. 8월 2일부터 5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명필름 15주년 영화상영회’는 이를 자축하는 행사다. 명필름에서 제작한 대표작인 ‘접속’(97년 장윤현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박찬욱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 임순례 감독), ‘광식이 동생 광태’(2005년 김현석 감독)를 상영한다. 각 영화의 감독과 배우, 영화평론가 김영진·이동진씨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했다.
심 대표가 서울극장 기획실에 입사해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1988년 당시만 해도 여성 스태프는 희귀했다. 심 대표는 “그때 촬영 현장에서 일지를 기록하던 여성들은 결혼 여부나 경력과 상관없이 ‘미스 스크립트’라는 호칭으로 불렸다”며 “‘여자가 카메라를 만지면 고장이 난다’는 설이 돌았을 정도”라며 웃었다.
3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을 만들다보니 크고 작은 구설에 휘말렸다.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당시 JSA전우회에서, ‘바람난 가족’을 상영할 때는 집배원들로부터 항의 방문을 받았다. 심 대표는 “영화는 오락뿐 아니라 사회적 기능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수할 수 있었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영화에 대한 이 같은 소신은 최근 개봉한 영화 ‘작은 연못’을 기획한 원동력이다. AP통신 최상훈 기자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 학살을 고발한 기사를 읽고 2003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영화를 기획했다. 이 같은 뜻에 동참한 많은 이들이 ‘노근리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의 유한회사를 세우고, 배우와 스태프가 노무·현물 출자를 해 영화를 완성했다. 심 대표는 “반미가 아니라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로맨틱코미디·애니메이션 등 한국영화 시장에서 ‘만들기는 어렵고 돈 벌기는 힘들다’고 인식되던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다. 심 대표는 최근 크랭크업을 마치고 개봉을 앞둔 ‘시라노:연애조작단’에 대해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과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등 청춘스타들이 만들어낼 새롭고 훈훈한 멜로영화”라며 “오랜만에 젊은 감성의 데이트 무비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긴장감을 나타냈다. 올해 말엔 베스트셀러 아동문학인 ‘마당을 나온 암탉’을 원작으로 한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을 내놓을 예정이다.
심 대표는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영화계는 상대적으로 여성 차별이 덜하고 혈연과 지연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라”며 “다만 요행이나 눈치가 아니라 재능과 능력으로 당당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