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밤, 아이들에게 ‘손’과 ‘집’을
휘청거리는 밤, 아이들에게 ‘손’과 ‘집’을
  • 윤혜린 /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소장
  • 승인 2010.07.23 10:55
  • 수정 2010-07-23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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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찰청에 신고된 가출 청소년은 2만2000여 명으로 신고되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가출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외박과 귀가를 반복하는 전환형 가출이 크게 늘어나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장기 가출 중인 십대 여성 중 다수가 스스로의 성을 보호할 수 없는 위기에 노출돼 있다. 결국 가출이라는 심리적·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먹고 자는 기초생활의 방식을 보통과는 다르게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나 하고 접속한 인터넷 공간에서 누군가 친절하게 고민 상담을 해주면 별 의심 없이 연결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성인이 청소년을 성적인 목적으로 만나거나 어떤 수단을 통해 연락을 취한 다음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행위(온라인 그루밍)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다. 채팅 사이트에서 ‘ㅈ ㄱ’(조건만남의 약자)과 ○○역 몇 번 출구만 쳐도 빠른 시간 내 만남이 가능할 정도다. 

십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을 보호할 수 없다면 가정과 사회는 그 역할을 해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린 성을 사면서도 그 행위가 이들의 생명력을 얼마나 갉아먹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는 매수자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출이 ‘탈출’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제공하는 문제 가정들이 많다. 또한 조건만남에 대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식으로 마음의 벽을 치고 있는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둔감하다.

가출과 탈학교도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즉 가출자는 일반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학교 밖 친구들이 되고 이들이 귀가해 다시 복학하는 경우에도 학업 부적응 등으로 다시 자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출이 몇 년 장기화되면 십대 후반에 다시 중학교에 입학하기가 어려워 학력 취득의 길은 요원해진다.

누구라도 앞이 캄캄할 때는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고속도로 야간 운전을 할 때 대낮에 시원한 푸름을 주던 가로수의 나무들이 무섭게 보인다. 공사 중인 듯 큰 덩치의 건물이 앞에 돌연 모습을 보일 때는 가슴이 오그라든다. 가출한 십대가 느끼는 심리적 두려움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이들이 한때의 위기 국면에서 한두 번 넘어지더라도 툴툴 털고 일어서게끔 휘청거리는 순간에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거친 여건의 삶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8할이, 혹은 9할이 ‘바람’이었다고 술회한다. 바람 맞고 자본 경험을 한 사람들, 거리에서 생존을 터득했던 것은 노숙인들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풍파를 이겨내고 닻을 내려 훌륭한 작가가 되고, 예술인이 되고,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십대 밀집지역인 동대문, 여의도, 신림, 신촌 등에서 가출 및 성매매 예방을 위한 심야 거리 상담을 해 온 경험을 통해 보았을 때 이들 십대는 컵라면 하나를 쥐고서도 매우 즐거워한다. 사회 일각에서나마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꼈을 때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달릴 용기가 나지 않을까.

컴컴한 밤길 돌부리에 걸리듯, 진창길에서 옷을 망치듯 때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위기를 맞은 친구들에 대해 손을 내밀어줄 효과적이고 통찰력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십대 여성 전용 드롭인센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암담한 얼굴로 들어오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깨끗한 방에서 한잠 재우고 빨래해서 나가게 하는 그 소박한 초기 서비스가 장기적으로는 나비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 ‘집 밖’에 ‘학교 밖’에 있지만 우리 사회의 ‘안’으로 들어와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되는 경로를 설계하는 데 온갖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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