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통과 생명감수성
사회적 고통과 생명감수성
  • 김정희 / 여성학자, 가배울 대표
  • 승인 2010.07.09 11:34
  • 수정 2010-07-09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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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께 먼저 질문을 하나 해볼까 한다. 독자님은 물을 생명이라 생각하는지 무생명이라 생각하는지를. 주저 없이 무생물이라 답한 분은 외람되지만, 학교 교육을 물먹는 스펀지처럼 쑥쑥 흡수한 근대적인 모범생 인간형이다. 물은 생명이라고 단호히 답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근대 지식의 미신을 탈출한 생명주의자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불교 세계관에서는 애초에 이런 이분법이 없었고 모든 것이 생명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생명을 해치는 일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알고 있기에 나는 동정심을 기르고 사람, 동물, 식물 그리고 광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것을 서원한다”라는 틱 낫한 스님의 만물 생명 존중의 서원이 있게 된다.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보음의 다음과 같은 말들은 어떤가?

“식물은 물질과 에너지를 그 환경과 교환함으로써 형성되며 유지되고 또한 분해된다면, 어떤 점에서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가를 명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생명 그 자체는 어떤 뜻에서 식물과 환경을 포함한 전체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근대의 다양한 이분법의 모태다. 이 모태에서 문화/자연, 이성/자연, 남성/여성, 정신/육체(자연), 이성/물질, 이성/감정, 주인·자본가·정상인/노예·비정규노동자·장애인, 인간/자연(비-인간), 문명/원시(자연), 생산/재생산(자연). 공/사, 주체/객체, 자아/타자의 이원론이 발전되어 나온다. 이 이원론적 세계관 하에서 전자는 후자를 무생물로 보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고 폭행하고 착취한다.

학교는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학습 공장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을 배우면서 흙, 물, 공기와 같은 자연은 생명 없는 무생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을 생명 없는 무생물, 즉 인간의 물질적 욕구 충족을 위해 아무리 파괴되고 고갈되어도 우리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그런 수단적 존재일 뿐이라는 의식으로 연결된다.

쉼을 모르고 달려온 개발은 자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필요로 했고 이는 천성산, 새만금, 4대 강 개발 사업에서 보듯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논의를 좀 더 연장시켜 보자.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을 생명으로 보듬기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됐다. 오로지 공부기계라는 물건으로만 다룬다. 생명 아닌 물(物)로 훈육된 아이들이, 그 아이들이 자라서 된 어른들은 즐거움도 모르고 나와 남의 고통에 대해서도 모른다.

‘2009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신고 된 강간범죄 사건은 1만5094건이었다. 하루에 41건씩, 즉 35분에 1건씩의 강간범죄가 신고 된 꼴이다. 일반적으로 신고 되는 성폭력은 신고 되지 않는 성폭력의 2%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제 성폭력은 신고 되는 성폭력의 50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실제 2008년 일어난 성폭력은 75만4700건으로 1초에 8.7회꼴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가히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할만하다.

가해자에 대한 형벌의 강화와 가혹함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측과는 달리 인권감수성을 기르는 성교육 강화를 말하는 쪽은 이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인다. 아,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애초에 보편적 인권을 중요시하던 인본주의는 사실상 근대 개발주의의 다른 한 쌍둥이 형제였고 따라서 ‘(일부 기득권층의) 인간중심주의’로의 전락은 필연적이었다. 이제 만물에 대한 생명감수성을 회복하는 작업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조기교육 대신, 풀고 풀고 또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집 대신 물, 바람, 흙을, 노래와 그리기와 다른 충분한 체험과 쉼을 돌려주면 된다. 교과 밥그릇 지키기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더는 이렇게 못 가르치겠다, 교과과정을 정상화하라는 교사들의 반란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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