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낙태, 보복성 고발 등 부작용 우려
민우회, 인권위에 복지부 상대 진정서 제출

“죽고 싶습니다. 원래 생리가 불규칙적이라 몸이 안 좋은 거겠지 생각했는데, 임신 5개월이랍니다. 학교도 내년이면 졸업이고, 취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무책임하게 임신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요?”

“저 어떻게 하죠? 남자친구랑 헤어진 상태에서 임신이라니…중절수술을 해주는 병원이 없네요. 혼자 낳아야 하나요? 집에 알리면 사람 취급도 안 할 텐데. 도와주세요.”

“저는 40대고, 남편은 내일 모레 50세입니다. 실수로 임신된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지옥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도 없이…더 늦기 전에 (낙태를 위해) 정말 중국으로 가야 하나요?”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지만, 둘 다 쪽방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아이를 낳는다면 태어나서부터 저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야 할 아이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수술도 안 해주고, 무작정 낳아서 어쩌라는 건지 정말 너무 답답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개설 ‘낙태에 대한 이야기’ 사이트(http://hotline.or.kr/respect)에 올라온 글들이다.

지난 2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 병원 4곳을 고발조치한 이후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타올랐다.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로 대표되는 낙태에 대한 갑론을박에 더해 최근 여성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건복지부의 낙태 관련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진정서를 제출해 이 문제는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6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건복지부의 ‘불법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 및 처벌 위주 정책의 여성인권 침해 여부 판단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민우회는 진정서를 통해 “낙태 고발조치 및 보건복지부의 정책 방향은 당면한 현실적 조건에 대한 개선 의지 없는 무정책과 다름없으며 이는 분명 예고된 여성의 안전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의 형벌권만 강화해 낙태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행보는 무면허 시술자에 의한 위험한 낙태시술만 증가시키고 낙태 시술비만 상승시켜 결국 여성의 몸 권리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작 낙태를 결정하는 주체인 여성들의 현실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한국여성민우회에 상담 접수된 사례 중에는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국내 병원에서 낙태수술 비용을 410만원까지 요구한 경우도 있어 실제 해외로 원정 낙태를 떠난 사례도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또한 ‘낙태법 위반’으로 병원뿐만 아니라 낙태한 여성까지 고발된 사례도 나오고 있다. 민우회나 여성의전화 상담 사례 중에는 파혼이나 파경을 맞은 관계에 대한 보복으로 낙태한 여성을 고발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민우회의 김희영 활동가는 “고발당한 여성과 함께 경찰서에 동행했는데, 경찰조차도 그 여성이 왜 처벌받아야 하는지 모르더라”고 한탄했다. 얼마 전 ‘낙태 시술을 도와주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20대 임신부를 유인해 성폭행한 범인이 구속된 사건은 ‘낙태 불법화’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방증하고 있다.

한편 6월 29일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불법 낙태수술을 하고 있는 산부인과 병원에 대한 지속적인 추가 고발을 할 예정이라고 밝혀 또다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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