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공무원이 여성 전문서 펴내는 수준까지 이르러

1998년 국민의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자치부(행자부)에 여성정책담당관이 신설됐다. 당시 행자부는 예전의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한 신설 부처라서 조직개편에다 인사발령으로 어수선했고 부서마다 기존의 사무실을 분리하고 통합하느라 북새통이었다.

여성정책담당관은 신설 부처의 신설 부서라서 처음에는 아예 사무실이 확보돼 있지 않았다. 초대 여성정책담당관으로 임명받은 필자는 같은 날 발령받은 김종인, 이병술 두 사무관과 함께 사무실이 없어서 다른 부서 사무실 창고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꽉 막힌 좁은 공간에서 일을 시작하려니 황당하기도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모두 새로 인사발령을 받은 터라 의욕과 사기로 뭉쳐 첫 날부터 업무에 대해 의논했다. 두 사무관이 각기 총무처와 내무부 출신이라 국가행정과 지방행정에는 두루 밝았지만 여성행정에는 생소해했다. 한국여성개발원에서 발간한 책들을 구해다가 무서운 속도로 섭렵해 나갔다.

한 보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간신히 새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인테리어 공사 순서는 기다려야 된다고 해 인테리어 시설이 들어오기까지 몇날 며칠을 텅 빈 사무실 바닥에 신문지와 골판지를 깔고 앉아 여기저기 쌓아놓은 여성 관련 책과 자료들을 뒤적이며 앞으로의 업무 추진 방향과 내용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지난날 정무장관(제2)실에서 여성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파견 나온 한국여성개발원의 연구원들로부터 여성문제와 여성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습득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결과 행자부 내 관련부서 간 협력이 실질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돼 부내 여성정책협의회가 설치됐고, 이를 계기로 예전의 내무부와 총무처 간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강조하는 행자부의 결속을 촉진하기도 했지만, 여성정책담당관이 신설된 다른 부처에서는 행자부의 여성정책협의회 모델을 벤치마킹해 갔다.

한번은 행자부에서 시·도 여성정책 담당국장 첫 회의를 소집했는데 회의 장소가 행자부 장관실 옆 기획상황실이었다. 벽에 걸린 역대 내무부장관의 사진들을 보면서 참석한 시·도 여성 국장들은 구 내무부에서는 없었던 회의라 하면서 대단히 반겼다. 

행자부 여성정책담당관은 크게 여성 공무원의 지위 향상과 지방의 여성정책 지원을 주요 기능으로 했다. 여성공무원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지방의 여성정책종합평가지원제도를 도입했다. 전자는 김종인 사무관이, 후자는 이병술 사무관 후임으로 온 김경희 사무관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 새로운 청사진으로, 새로운 제도로 행자부 여성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후 김종인 사무관 후임으로 온 정부효 사무관은 남성으로서 여성문제에 애정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한 결과 ‘서서 오줌 누는 여자, 치마 입는 남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등 여성에 관한 책을 저술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행자부의 여성정책을 기록한 최초의 백서인 ‘여성과 공직’(2000) 원고를 정리하면서 여성문제 전문가가 된 것이다. 현 정부는 여성정책담당관제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아 이런 일들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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