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을 낳고난 뒤 남편은 옥편을 뒤져가면서 이름을 ‘조은’으로 지어왔다. 첫 딸 이름은 ‘한결’이다. “한결 좋은 엄마가 되어줘. 나는 한결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두 딸을 낳고 키워가면서 함께 성장하는 ‘한결 엄마’에서 ‘한결 조은’ 엄마가 됐나, 잠시 생각해본다. 흐음, 나는 “한결 좋은” 엄마라고 자부한다. 누가 들으면 “웬 잘난 척이야” 이러겠지만.

난 과수원집 2남 5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유년기에 오빠, 언니들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터라 무뚝뚝한 경상도 엄마의 살가운 애정 표현을 받지 못했다. 감수성 예민하고 자아가 강했던 나는 혼자서 삭여야 했던 게 많았다. 특히 젊은 엄마와 옷 사러 다니면서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좋은 엄마가 돼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상을 나름 구상했더랬다.

내 소원은 이뤄졌다. 친정엄마가 소풍갈 때 선생님 드리라고 싸준 음식이 있었는데, 찌그러진 찬합에 싸준 게 창피해 닭찜이니 김밥이니 버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이 선생님에겐 아주 예쁜 찬합에 음식을 싸서 보내주었다. 우리 엄마는 속옷도 잘 안 사줬지만, 난 딸아이에게 예쁜 키티 속옷도 사주었다.

그런데도 뭔가 불안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좌절하게 된다. 매스컴에 나오는 우수한 사람들 뒤에는 대단한 부모가 있던데 부족한 나 때문에 우리 아이는 영재도 못 되고, 영어도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서 놀리지 말고, 학원도 좍 돌리면서 스케줄 잡아 과외 시키면서 잘 관리하면 특목고, 명문대도 갈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재밌으니까 아이들도 재밌을 거라는 착각도 가끔 하면서 말이다. 만족도가 극에 달했을 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환희를 느낀다. 그 맛에 만날 궁리만 한다. 무모하기론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마다. 다른 엄마는 좋은 학원을 찾든가,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든가, 무슨 문제집이 좋은가 연구한다는데 우리 집은 청약통장 깨서 여행을 간다. 올 여름방학에도 수학문제집 안 풀고, 다니지도 않는 3년치 학원비를 ‘땡겨(?)’ 40일 동안 멀리멀리 이탈리아 여행을 갈 것이다.

나중에 잠깐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키울 걸 하면서. 그러나 내 엄마를 보면서 내가 좋은 엄마상을 연구했듯이 우리 아이들은 철없이 재미있는 일만 연구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걸 배워갈 것이다. 이런 엄마와 함께라서 한결, 조은이가 재미있는 성장기를 보냈다고 나중에 추억했으면 좋겠다. 아이와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엄마이고 싶다. 끊임없이 생각과 경험, 느낌을 나누고 싶다. 어제와 다른 일상,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엄마’여서 세상은 또 살아갈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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