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여성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죽었다고 해요. 먹을 것도 없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그 시절에 태어나서 엄마 젖도 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와중에 살아남았으니 우리 세대는 생존력이 강할 수밖에 없죠.”(임인옥 연세대 여자총동창회장·50년생)

민간인 사망자만 30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1950~53년) 태어나 어언 예순의 나이가 된 여성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한 생존력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후 폐허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1960년대 4·19 혁명과 5·16을 거쳐 유신정권 시절에 대학생활을 한 이들의 활약은 특히 여성운동사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대학 문호가 여성들에게 넓어지기 시작한 70년대 학번들로, 여성운동·민주화운동의 세례를 직접 받았고, 이 경험을 통해 90년대엔 여성 정치진출과 기존 남성중심 제도 변혁에 앞장서게 된다. 그 뿌리는 70년대 초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여성들의 소모임. 여기서 사회의식과 여성의식을 접하고 이를 동력으로 80년대 성폭력·미스코리아대회 반대운동, 지역탁아운동, 여성문화운동 등 ‘여성’ 중심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한다. 이 경험을 통해 법과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 1990년대부터 기존 정·관계 제도권에 여성을 진출시키려는 본격적인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이 전개된다. 1991년 실시된 지방자치제, 여성할당제 이슈는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의 물꼬 역할을 톡톡히 했다. 90년대엔 대표적인 여성인권법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이끌어냈고, 일본군위안부(정신대) 문제를 한국 사회에 드러내고 국제사회에 이슈화시켰다. 

실제 중앙 정치권에서는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50년생),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50년생), 이미경 민주당 의원(50년생, 중앙당 사무총장),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52년생, 중앙당 여성위원장), 김금래 한나라당 의원(52년생) 등이 포진해 있고, 국제사회엔 한국인 최초로 유엔사회권위원회 위원이 된 신혜수(50년생) 성매매추방범국민운동 상임대표가 있다. 여성학과 여성정책 분야엔 김태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50년생),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51년생), 조옥라 서강대 교수(50년생), 정진성 서울대 교수(53년생),  박숙자 한국보윤진흥원장(52년생) 등이 있다. 특히 법조계엔 ‘여성 최초’의 헌법재판관 전효숙 이화여대 법대 교수(51년생), ‘여성 최초’의 법제처장 김선욱 이화여대 신임 총장(52년생)이 두드러진다. 손병옥 푸르덴셜 생명보험 부사장(52년생), 최명희 한국외환은행 부행장(53년생) 등 기업뿐만 아니라 가수 양희은(52년생), 연극배우 김성녀(50년생), 탤런트 김형자(50년생), 이효춘(50년생), 가수·화가 정미조(50년생) 등 문화계 인사들도 6·25세대 여성들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부는 ‘여풍’은 시대정신에 치열했던 6·25세대 여성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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