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여성과 6·25전쟁
7080 여성과 6·25전쟁
  • 김수희 기자 ksh@womennews.co.kr, 김남희 기자 knh08@womennews
  • 승인 2010.06.18 10:43
  • 수정 2010-06-18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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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성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강요했다. 여성들은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으나 오랫동안 ‘국외자’로 침묵해야 했다. ‘민간인 희생 비율이 그 어떤 전쟁보다 높았던’ 6·25전쟁이 25일로 발발 60주년을 맞는다.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전쟁을 ‘여성의 눈’으로 조망한다.  <편집자주>

여군 장교로 한국전쟁 겪은 이수덕 회장

“요즘 세대 국가관,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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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25세의 젊은 새댁은 1950년 6월 25일 늘 있는 공습이려니 생각하고 교편을 잡고 있던 황해도 연백초등학교에 있다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슬리퍼 바람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저녁이면 돌아갈 줄 알고 나왔던 길이 60년이 돼버렸어.”

이수덕(85·서울 서초구) 한중서화부흥협회 회장은 “새가 되어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사무실 벽에 직접 쓴 ‘鳥’자를 가리켰다.

이 회장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길을 나서 백석포라는 포구에서 남편과 재회해 커다란 소금배를 타고 덕적도를 거쳐 인천에 닿았다. “인천에서 친정인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한강 다리가 끊어져 못 간다고 해서 수원으로 길을 잡았지. 육군 본부가 가는 곳을 따라 다시 대전으로 대구로 옮겨가며 길가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걸어갔어. 그게 신혼여행이었지.”

대구에 정착한 이 회장은 역전에서 주먹밥을 나눠주는 대한부인회 사람들이나, 어린 학도병들을 보면서 구경만 하는 것이 싫어 당시 여군 모집에 응시했다. “여군 지원자가 많아 경쟁률이 셌어. 여군 500명이 훈련소에 입소해서 한 달 후 480명이 졸업했는데, 육군사관학교 지휘관들에게 독도법이니 하는 고급 교육을 한 달 주야로 배웠던 게 기억나.”

보병으로 입대한 이 회장은 여자 장교 시험에도 합격해 소위가 되고, 대위로 전역했다. 장교가 된 후 부산, 인천, 춘천 등 발령지를 옮겨다니며 근무를 했다. 다행히 당시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남편과도 발령지가 가까워 부산 시절을 제외하곤 함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교편을 잡은 이 회장은 서울 정신여고 서예 선생님 시절인 1974년 8월에 정신여고 학생들과 함께 대만에서 미술전람회를 개최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한중서화부흥협회를 이끌고 있다.

“교육이 너무 중요해. 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 세대는 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후세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겪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요즘 세대들은 국가관이 약한 것 같아 안타까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학교가 제대로 교육해야 하는데….”

농촌서 이념 대립 겪은 15세 소녀 공석분씨

“군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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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집을 구하고 있다기에 내가 동네에서 집도 알아봐줬고, 우리 어머니한테도 ‘어머니, 어머니’ 하며 살갑게 대하기에 오라비처럼 생각했는데….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 구제하면 악’이라고 하신거여.”

15세의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은 공석분(75·서울 용산구)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며 입을 열었다. 충남 서산에서 왔다던 키도 훤칠하고 잘생겼던 그 청년은, 종전 이후 공산당원으로 밝혀져 처형당했다. 청년이 묵었던 집에서는 당시 참전군인이었던 공씨의 오빠들의 이름이 담긴 ‘살생부’가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공씨가 거주하던 충남 홍성읍 오감리는 비교적 전쟁을 무난하고 조용히 넘긴 마을에 속했다. 더구나 공씨의 집은 산이나 밭도 넉넉히 소유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떡 장사를 하고 있던 터라 전쟁통에도 특별한 생활고는 없었다.

그러나 2남 2녀의 동기 중 오빠 두 명이 모두 군인으로 자원하면서, 한동안은 공산당원들에게 모진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군인 가족이라는 것이 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씨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공산당원들에게 떡이나 곡식 같은 음식을 제공해야 했다. 공씨의 언니는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압력에 못 이겨, 40리쯤 떨어진 외할머니댁으로 한동안 피신했다.

공씨는 “나도 그치들이 시키는 대로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서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이런 노래를 가르쳤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강제로 하루 종일 불렀다던 그 노래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면서 ‘김일성 노래’를 기자 앞에서 완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인민군이 공씨의 기억에 무섭게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쟁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던 농촌 마을에, 어느 날 “인민군이다!”라는 함성이 터지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내가 ‘어머니, 저 사람들은 왜 이리 작아요’라고 물어보니, 어머니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못 먹고 못 입고 피곤하니 말라서 그렇다’라고 하셨는데, 그이들이 참 안쓰럽게 생각됐어”라고 회상했다.

신혼 1년 만에 남편 전사 목종예씨

“스물둘에 생계부양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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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미망인’인 목종예(80·대전 유성구)씨는 스물둘에 세상을 뜬 남편 얼굴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인물이 훤하고, 늠름했던” 남편 박환배씨와의 신혼은 9개월 만에 끝났다. 1952년 5월 입대한 남편이 10월 강원 금하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후 목씨는 남매를 부양하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그녀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 결혼식도 당겨졌다. “원래 9월 20일에 약조했는데 난리 터지니까 며느리를 업어오다시피 했지. 음력 8월 초사흘 야밤에 친정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청사초롱 밝히고, 신랑은 사모관대 쓰고…. 그러곤 첫날밤을 치렀지.”

이튿날 시집이 있던 대전 유성구 복룡동으로 왔다. 인민군에 잡힐까봐 솔밭으로 숨어 100리를 걸었다. 시댁은 시부모와 시아주버니, 조카까지 13명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목씨는 “‘분가해서 살면 내가 다해줄게’라고 달래던 남편의 말이 생생하다”고 했다.

헌병으로 제대한 남편에게 다시 소집영장이 나왔다. 영장이 나온 후 이삼일 만에 논산훈련소로 가야 했다. “훈련소 가는 날 아침에 ‘잘 있다 올 테니 고생하지 말라’고 얘기하더니 낮에 바로 갔어. 어디 내다볼 수나 있나. 남부끄러워 얼굴 들고 잘 갔다 오란 말도 못 하고…. 젖먹이 딸을 안고 열차 보며 울고불고 했지….”

남편은 논산훈련소에 5개월간 있었다. 여름에 시아버지와 함께 딸을 업고 면회 가서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남편은 입대 후 첫 전투에서 인민군 토벌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했다. 전사통지서를 받은 날, 하늘이 노랗고 땅이 꺼지는 듯했다. 장례를 치르고 선산에 유골을 묻었다. 그 뒤 남편을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팔자가 사나워 남편이 죽었다”는 시댁식구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다 전쟁이 끝난 후 같은 동네에 “손바닥만 한” 단칸방을 지어 분가했다. 시동생 아들을 양자로 들인 후 생계난을 해결하기 위해 딸기 농사, 고구마 농사, 보리 농사를 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딸 선애(58)씨는 현재 웅진섬유 대리, 아들 선건(55)씨는 동대전농협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목씨는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헌병대 옷을 입은 남편은 그녀에겐 언제나 스물두 살의 듬직한 청년으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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