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는 인구가 많지 않아서 소련 시절 아이 많이 낳기 운동을 해서 10명씩 낳는 집도 있었다. 대신 국가에서 18살 까지 보육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 외에도 아이를 많이 낳은 어머니에게는 아이 수대로 금, 은, 동메달이 주어지고 비행기 무료 탑승 등 많은 혜택이 있었다. 요즘은 키르기스스탄이 독립되고 민주주의가 되면서 많은 변화가 왔지만 아직도 한국에 비해서 아이를 조금 더 많이 낳는 편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자녀가 없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부모가 혼자 사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농촌에 살아도 나이 드신 분, 특히 할머니가 가축은 키워도 홀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농사일이나 바깥일은 거의 남자들의 몫이다. 소련 시절부터 남녀평등을 강조해 왔지만 전통적으로 힘든 일은 남자가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있다. 만일 자녀가 특별한 이유 없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면 부모를 모시고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큰아들이 아닌 막내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전 재산을 막내아들에게 남기도록 되어 있다. 아들이 없으면 딸이 모셔도 되고 재산도 물려받을 수 있다. 더 특이한 것은 아들이 3∼4명인 경우에 큰아들이 먼저 결혼하면 둘째가 결혼할 때까지 부모를 임시로 모셔야 한다. 둘째가 결혼하면 큰아들은 분가를 한다. 둘째도 마찬가지로 막내가 결혼할 때까지 같이 살고 나중에 분가를 해야 한다. 경제적인 여유에 따라서 대부분의 부모가 분가시켜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들이 직접 벌어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이 풍습은 아마도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큰아들이 독립할 때는 부모가 아직 젊어서 뒷바라지가 가능하지만 막내가 독립할 때가 되면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뒷바라지가 어렵기 때문에 부모와 같이 살고 재산도 물려주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국 농촌에는 아직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10~20년 후에도 이런 아름다운 광경이 계속될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부모의 위대함을 살아계실 때 알고 효도하는 세상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