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월 31일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인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회원국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실질경제성장률도 회원국의 평균실질성장률 2.0%보다 낮은 1%대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저출산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저출산 쇼크로 인해 지난 6월 9일 정부는 종교·시민단체, 경제계 등이 모여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를 출범시켰고, 이어서 15일에는 개신교 중심으로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1.15명. 저출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과 함께 각계에서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쏟아놓았다. 사회 부문별로 종교계는 낙태방지 등 생명존중운동과 육아지원시설 확대를, 시민사회계는 공부방 확대와 양성평등문화 조성을, 경제계는 주 40시간 근로시간제 정착과 직장보육시설 확충 등을 안으로 내놓았다. 교회 등 종교시설 안에 비영리 영유아 보육시설을 권장하고 직장 내 수유방 설치 등을 추진하기로도 했다.

이 같은 범국민적 운동은 우리 사회에 ‘아이 낳는  풍토’를 확산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으나, 흥미로운 것은 실제 아이를 낳는 주체인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출범한 운동본부에는 정계, 종교계, 학계, 재계, 정계 인사가 1000여 명이나 참석했다고 나와 있으나, 미디어에 등장한 각계 대표는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각계각층에서 내놓는 대안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저출산 대책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화려한 말잔치에 머물고 있다.

저출산 대책을 고려함에 있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대의 여성과 남성들이 왜 아이 낳기를 주저하고 포기하는지를 진지하게 읽어내야 한다. 5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인구학자 필립 모건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을 초합리성(super rationality)과 집중적 돌봄(intentive care)으로 설명했다. 즉 젊은 부부들은 유치원부터 고등교육까지 교육비용을 계산하여 아이 낳기를 결정하고, 무한경쟁 사회에서 한 자녀만이라도 집중적인 투자를 해서 잘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두 번째 자녀 출산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민영화, 고용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등 무한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적 여건 속에서 젊은이들이 가족을 만드는 방식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현재 나와 있는 정책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한국여성학회의 학술포럼 ‘낙태 불법화와 여성’에서 한 여성은 자신은 미혼으로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으나 결국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사회적 편견과 이들의 삶을 읽지 못한 배려 없는 정책이 ‘아이 낳기’라는 힘든 선택을 한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출산장려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경험한 일들이다. 이들 국가가 행한 저출산 관련 정책을 들여다보면 캠페인보다는 현재 자녀가 있는 여성과 가족,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계획 중인 여성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한번 나온 치약을 다시 넣기는 어렵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출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저출산 대책의 어려운 점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닌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실천이 없는 정책,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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