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같은 대학원 문화…강의 배정부터 ‘여성’ 배제 다반사

최근 한 남성 시간강사의 자살을 계기로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열악함이 쟁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시간강사들이 임용·복지 문제는 고사하고 강의 배정이란 기본 단계에서부터 부당함을 감내해야 하는 ‘이중차별’의 덫 속에 있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본교 출신이건 타교 출신이건 남성 중심 라인에서 우선적으로 배제돼 강의를 맡기가 남성보다 어렵다.

“대학원에서부터 여학생들은 거의 소외된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여학생 수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 등 모든 것이 남학생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지도교수에게 시간강사나 공동 프로젝트 요청이 들어오면 거의 자대생 출신 남학생에게 그 자리가 돌아갑니다. 장학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은 장학금 자격 요건도 자대생 본과 남학생 중심입니다.”  

서울 P대 국문학과에서 박사를 수료한 J씨(32·여)는 2년차 시간강사다. 일주일에 두 번 경기도와 충청도의 대학으로 강의를 나간다. 두 학교 합쳐서 주당 13시간의 강의를 하고 두 대학에서 받는 총액이 월 160만원 정도다. 한 반에 140여 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과목도 있어 그가 맡고 있는 학생 수는 수백 명에 달한다. 학교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과제나 시험 채점 때는 아주 곤혹스럽다. 그래도 J씨는 이나마 강의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J씨는 ‘아직도 군대 같은’ 대학원 문화에서 시간강사를 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비운 자리를 대신 채우거나 대학에 자리 잡은 선배들이 ‘챙겨주는’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데, 교수 성비와 비례해 당연히 대부분 남자 후배들의 차지라고 한다. 특히 타대학 학부 출신 여학생들은 전적으로 스스로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지원 전무의 고립무원 처지다. 타대학 학부 출신인 J씨는 P대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교수가 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토로한다.

“교수 자리는 한정돼 있고, 자대생 출신들도 넘치는 상황에서 타대 출신 여학생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타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강사 자리가 없어지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경기도 B대학 박사 L씨(42·여)는 “지도교수가 챙겨주는 것에 따라 다른데, 교수 임용 시에는 남학생들이 훨씬 유리한 것 같다. 남자 교수들의 경우 술을 먹을 때도 끝까지 남아서 챙겨주는 남자 제자들을 든든해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전북 T대학 이공계 박사 K씨(38·여)는 “이과 쪽은 아무래도 논문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기 때문에 덜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채용할 때는 로비가 작동하는 부분인 만큼 남학생들에게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남녀공대 여성 시간강사들에 따르면, 교수들 중엔 남학생 제자들을 아예 ‘아들’이라고 챙겨 부르는 사람까지 있고, 남성 선배들은 “우리 꿈나무”라며 서열과 계승 순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시간강사의 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각기 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고, 18대 국회에서는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각기 법안을 발의했고 계류 중이다)이 몇 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긴 하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여성 시간강사들에게는 넘어야 할 ‘차별’의 벽이 남아있는 셈이다.

지난달 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45) 박사를 비롯해 1998년 이후 8명의 시간강사가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교수 임용 비리에 대해 항변하며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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