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후 4시. 어린이실로 들어갔다.
“얘들아~, 책 읽어주기 시간이 왔단다. 선생님이랑 같이 읽을까?”
“저, 책 읽을 줄 아는데요. 제가 보면 안 될까요?”
이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멋쩍어 하며 책읽어주는 자리에 앉았다. 5분이 지나도 아이들은 내 앞에 오지 않았다. 이때 필요한 구원투수는 아들이다. 열람실에 있는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들은 흔쾌히 어린이실로 따라 들어왔다. 아들을 앞에 앉히고 첫 번째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둘 다른 아이들도 내 앞에 앉는다. 무사히 한 권 넘어가고, 다음 책을 시작할 무렵 역시나 아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옆에 놓인 예의 그 책으로 눈이 힐끔힐끔 간다. 코도 파고, 손장난도 한다. 책 읽어주기를 끝내고 매점에서 약속한 간식을 사 준다. 도와준 거 고맙다고 하면서 잔소리를 한바가지 늘어놓는다.
나는 이런 엄마다. 도서관에서 어린이 책도 읽어주고, 아이는 놀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생활에선 실천하지 못한다. 책 읽는 게 중요하니 저녁 먹고 나선 다른 것 하지 말고 책만 보라 하면서 숙제는 다 했는지 꼭 확인한다. 잠자기 전 30분은 책 읽어주는 시간으로 정했으면서 기분이 틀어지거나 피곤하면 핑계를 댄다.
‘주말은 아빠가 읽어주기’란 규칙도 단지 아빠와의 독서가 중요해 만든 것만은 아니다. 책은 자유롭게 읽어야 한다면서 도서관에서 보이는 아이의 태도가 창피한 것은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이것뿐이 아니다. 점수가 인생의 다는 아니라면서 문제집 풀고 놀라고 강요하고, 외동이니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숙제는 왜 제때 못 하냐고 다그친다. 당연히 놀고만 싶어 하는 아이에게 학원 하나도 안 다니면서 왜 공부할 생각은 눈꼽 만큼도 안 하냐고 소리 지른다.
나는 이렇게 생각과 행동이 다른 모순덩어리 엄마다. 이런 모순은 어린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시작됐다. 처음에 책 속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 마음이 이랬구나, 어른들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른 욕심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려고 하는구나’란 생각에 부끄러웠고 아이에게 미안했었다.
오늘도 엄마에게 시달리다 잠든 아이를 본다. 하루 종일 이것저것 만지고 놀았을 거칠고 새까만 손을 보며 생각한다. ‘그래, 엄마가 널 애어른으로 만들려고 애써도 꿋꿋하게 아이답게 크렴. 우리 함께 해보자.’ 조금씩 커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머리로 알았으니 몸으로 실천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리라.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아니 그 반만이라도 엄마도 커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