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
자립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
  • 윤혜린 /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소장
  • 승인 2010.06.11 09:38
  • 수정 2010-06-11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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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즉 자립(自立) 학교가 있다. 지난해 가을 홍익대 부근 서울시늘푸른여성지원센터 지하를 터 삼아 둥지를 틀었다. 10대 여성 중에서 가출이나 성매매에 노출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이다. 

예전의 ‘원조교제’가 요새는 ‘조건 만남’이나 ‘애인 대행’ ‘고소득 여성 알바’로 표현되지만 어리고 젊은 성을 산다는 속성에는 변함이 없다.

탈성매매 자활 지원활동을 오래 한 어떤 분의 말로는 이들 중에 예술적 감수성과 디자인 감각 쪽으로 소질이 있는 친구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들이 별종이거나 호기심의 대상이 될 특이집단은 아니다. 스스로는 또래의 일반 10대 여성보다 조금 ‘세다’고 자부하지만 거친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거세진 측면이 있다면 바람막이 역할을 못한 사회와 가정, 학교 등이 근본 문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적극 이들을 지원하려면 피해자나 범죄자로 보는 시선을 거두고, 이들이 ‘센’ 에너지를 표출하는 방향을 새로 잡게끔 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된 우리 아이들”이라는 따뜻한 보호의 마음을 감추어 두고 이들의 자존심과 자기존중감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센 척이 아닌, 진정으로 센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 교과과정의 측면에서는 과거의 상처와 힘들었던 시간들을 치유하는 일에 머무르지 말고 야심 찬 목표에 도전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성취 경험들이 과거 흔적들을 덮어씌울 수 있는 방향으로 편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검정고시를 통한 학력 취득이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직업 체험과 인턴십 과정 등이 출발점이 된다.

더 나아가 바리스타건, 회계사건 이들이 꿈꾸는 직업 세계의 선배와 짝지워주는 멘토링이 제공돼야 한다. 직업에 대한 한갓 선망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 계획을 설계할 수 있는 경로를 닦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이고 끈질긴 자립 지원을 교칙 삼아 현재 기본 6개월 과정인 학업과 졸업이 곧 서비스 ‘사례 종결’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별 후속 지원의 인프라로 연결돼야 한다. 이 친구들에게 희망의 삶에 대한 동기부여의 계기를 주려는 쉼터나 보호시설의 노력을 이어받아 자립 학교가 그 다음 단계의 자원들을 조직할 때 성과의 시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난 4월 검정고시를 며칠 앞두고 들려온 고함소리, 비명소리. 폭발 직전의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요사이는 그 고비를 잘 넘기고 합격해 낸 성취감이 감돌고 있다. 꼭 공부하기뿐이랴. 커피 매장에서 어렵게 모은 시급을 한방에 털어먹지 않고 미용 디자이너가 될 종잣돈으로 삼겠다는 결심도 귀하디귀한 큰 성취다. 자해를 반복적으로 하던 삶에서 벗어나오려고 안간힘 쓰는 몸짓도 큰 성취다.

이들에게 자립의 교과서는 이렇듯 크고 작은 성취들이 디딤돌처럼 깔린 그런 여정이었으면 한다. 나는 진담을 섞은 우스개로 “여러분의 0기 선배는 김연아씨예요”라고 말하면서 스케이트 칼날 위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일,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훈련이 바로 자립 수업이라고 이유를 댄다. 얼마 전 배출된 1기뿐 아니라, 2기, 3기 등 졸업생들이 뒤를 잇고, 선배는 훌륭한 역할 모델을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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