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휩쓰는 ‘반(反) 부르카’ 바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 중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 유럽 전역에 부는 반 부르카 정서는 9·11테러 이후 부르카를 쓴 여성에 의한 자살폭탄 사건 등 이슬람 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많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 중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 유럽 전역에 부는 반 부르카 정서는 9·11테러 이후 부르카를 쓴 여성에 의한 자살폭탄 사건 등 이슬람 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많다.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인 부르카에 대한 논란이 전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4월 말 벨기에 하원이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금지 법안을 가결한 데 이어  프랑스에서도 사르코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부르카 금지 법률안이 추진되고 있다. “부르카는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며 사회 안전을 위협한다”는 금지안 찬성 의견과 “여성들의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며 또 다른 형태의 인종 및 종교 차별”이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부르카 착용은 프랑스 공화국 가치에 위배된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 5월 19일(현지시간)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 주재로 열린 각료회의에서 모든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니갑 등 전신을 가리는 의상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부르카 착용 금지의 법제화를 위한 첫 단계에 들어갔다. 이로써 프랑스는 벨기에에 이어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금지를 공표한 두 번째 국가가 됐다. 부르카는 일부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어쓰는 의상을 가리키며, 니갑은 이와 비슷한 의상으로 눈구멍만을 뚫은 것을 말한다.

이날 프랑스 정부는 “부르카와 같은 전신 베일의 착용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의 실현을 어기는 것이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공화국의 기본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관습은 그것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행동이라도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결의안 통과가 확정된 후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장 프랑소와 코페 원내대표는 “오늘 우리는 중요한 ‘랑데부’를 맞이했다”면서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이번 결의안은 반드시 법률로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이 정식 법률로 채택되면 부르카 착용 금지를 어긴 개인에게 150유로의 벌금을 물리거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다. 또한 여성에게 이러한 의상을 강제하는 사람에게는 1만5000유로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금지령은 공공건물뿐 아니라 길거리나 시장 등 모든 공공장소의 여성들에게 적용되며 관광객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따라 중동 부유층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는 파리의 고급 상점 점주들은 중요 고객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관광객에게도 적용…위반 시 벌금형 또는 시민권 박탈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르카 금지령의 추진을 공식 표명한 것은 2009년 6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서다. 그는 이 연설에서 “부르카는 프랑스 땅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 프랑스 국민은 사회생활로부터 단절되고 개인의 정체성을 빼앗긴 채 장막 뒤에 갇힌 여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의 연설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부르카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식 발표한 첫 연설로 기록됐다. 연설 직후 사르코지 대통령은 의회에 이슬람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 관습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으며 지난 4월에는 부르카 착용 금지 법률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은 7월 이전에 열릴 하원에서 투표에 부쳐진 후 9월 상원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률로 확정되면 이슬람 여성들이 부르카 착용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기간을 가진 후 6개월 후에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2000여 명의 여성이 전신 베일을 착용하고 있으며 약 500만 명의 이슬람인이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 2004년 학생들이 학교에서 베일 등의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부르카 금지령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정부의 행정·입법 최고 자문기관인 국가평의회는 “부르카 착용의 전면적 금지는 프랑스 헌법에 위배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특히 야당인 사회당 등 사회주의자 세력들은 부르카의 전면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 마르티네 오브리 사회당 당수는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금지는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이슬람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의회 내 이슬람 신자들도 “프랑스 내 이슬람인들로 하여금 따돌림을 당한다고 느끼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같은 경고를 입증하듯 최근 프랑스 도심의 한 의류가게에서 부르카를 착용한 무슬림 여성이 쇼핑을 하던 한 여성 변호사에게 욕설을 듣고 강제로 부르카가 벗겨지는 등 모욕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격을 받은 무슬림 여성은 상대방을 ‘종교 모독과 인종 차별적 언행’으로 경찰에 고소했고 상대 여성 또한 무슬림 여성을 ‘폭행’ 혐의로 맞고소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자문위 또한 11일 부르카 금지법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인권감시기구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19일 프랑스 의원들에게 금지안을 통과시키지 않도록 촉구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프랑스 대변인인 패트릭 델루뱅은 인터넷 언론 IPS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경찰에게 그 임무를 맡긴다면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인권감시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HRW)의 주디스 서덜랜드 조사관은 “이번 금지법은 프랑스 및 유럽 전역의 이슬람인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며 “유럽 내 이슬람인에 대해 고려돼야 할 수많은 다른 이슈가 있으며 이와 같은 법안은 이슬람 여성들을 돕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9·11 테러 여파가 유럽의 반 부르카 정서로 확산돼

벨기에와 프랑스에 이어 ‘반(反) 부르카’ 정서는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일 스위스의 한 지방정부는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전면 금지 시행을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23일 스위스의 독일어 일간지 ‘블리크’ 일요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7.6%가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금지에 찬성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스위스 전역에서 14~59세의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에서 반대의견은 26.5%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70%), 영국(57%), 스페인(65%), 이탈리아(63%), 독일(50%) 등 유럽 주요 5개국 모두에서 과반수 이상이 부르카 금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같은 유럽인들의 부르카 반대는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부르카를 쓴 여성에 의한 자살폭탄 사건 등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반 이슬람’ 정서로 표출됐다고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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