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중 여성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여성주의자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경험하는 다소의 막막함과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정작 내 동료 중 한 명이 내가 정말 여성주의자인지 물어왔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질문인가? 순간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직까지 변함없이 나를 지탱하는 이론은 여성주의 이론이며 내가 관철하고자 하는 사상 또한 여성주의라고 한다면, 그리고 여전히 그 이론의 정당성을 확신한다면 나는 여성주의자인가?

그리고 동시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은 여성주의자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여성주의자라고 지칭하는가? 누군가는 여성주의자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낙인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가 차지하는 위치와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은 그동안 너무도 많은 이론적 분석과 성과를 이루어왔다. 우리가 이루어온 평등을 위한 노력들은 우리 사회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런데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서 여성주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때때로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정체성, 여성운동의 주역들 그들이 인식하는 스스로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 이것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주의 정체성을 내적으로 외적으로 확인받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또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타인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주의자의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며 함께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의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막막함은 스스로의 자아정체감과 타자에 의해 규정된 나의 정체감에 대한 차이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와 여성주의자들이 정의하는 여성주의 정체성 사이의 차이에 기인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성주의를 강의하면서 아직도 나는 스스로가 계몽주의자라는 생각을 한다. 우스운 이야기로 가끔 농촌을 돌아다니며 청결과 인구조절 정책을 전달하던 시기의 운동가들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여성주의가 가지는 대외적 위상과 우리 내부의 발전 정도의 간극은 여성주의를 섬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운동이 시민운동과 함께 하는 길을 가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항상 이러한 섬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여성주의자들은 성별분업이 가지는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함께 하는 작업의 소중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는 시민운동과 함께 하는 한계로 우리만의 속도를 가지고 달려온 것은 아닌가?

우리의 주장과 다른 우리의 현실을 우리가 만들어 간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이제 여성운동에 필요한 것은 시민운동과의 새로운 조우가 아닌가? 조금은 느리고,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여성운동을 여성만의 운동이 아닌 우리들의 시민운동으로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가질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여성주의자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여성주의의 정체성은 이제 절반의 운동으로 그쳐서도, 우리 사회의 소수집단의 섬으로 귀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여성주의를 공유하고 이것을 자신의 정체성의 기초로 하는 다수의 시민들을 양산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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