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유권자 정치의식 조사 결과는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34.1%인 반면, ‘만족하지 않는다’는 63.2%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선거는 실제로 유권자의 의견을 얼마나 잘 대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변하지 않는다’는 62.2%로 ‘대변한다’(37.5%)보다 훨씬 높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국민의 오직 18.4%만이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만족하면서 동시에 선거가 유권자의 의견을 잘 대변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 2명 중 1명 정도(45.5%)는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선거가 유권자의 의견을 잘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동일한 헌법 하에서 5번의 대선, 6번의 총선, 5번의 지방선거를 치렀고, 두 번의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절차적·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발전보다는 퇴보한 면이 없지 않다. 절차와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데 필수적인 배려와 관용이라는 소프트웨어와 기본적인 원칙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이념·지역·세대·계급에 따른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무거운 마음으로 직시해야 한다. 실제로 KBS와 동서리서치가 작년 7월에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84.7%로,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3.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더욱이, 10년 전과 비교할 때 갈등이 ‘심각해졌다’는 의견이 89.0%나 되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대표하여 대안을 조직함으로써 한편으로 대중 참여의 기반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기여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가 과연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유권자는 선동과 감성이 아니라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을 보고 투표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 따라서 선거가 축제의 장이 아니라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표와 승리만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난무하면 민주주의는 결코 성숙될 수 없다.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고 지키는 것은 후보자도 정당도 아닌 국민이다. 국민들이 선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냉정하고 꼼꼼하게 후보를 평가하여 투표할 때만이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와 퇴보를 넘어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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