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온 석유로 냉난방을 하고, 밥을 짓고, 샤워를 하고, 전깃불을 밝히고, 지구의 허파인 원시 삼림들을 파괴하여 도시민의 육식을 위한 목장으로 개조하고, 강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차별적인 댐이나 보의 건설과 같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속시켜 가기 위해서는 지구는 두 개도 모자라고 세 개도 모자란다고 한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환경 악화와 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은 1972년 스톡홀름 유엔 인간환경협의회에 의제로 등장한 이후, 지난해 말의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회의에 이르기까지 유엔 정책의 지속적인 의제가 되고 있다. 1992년의 지구환경개발회의(지구정상회의, ‘리우회의’로도 불린다)는 지구환경 질서를 지키기 위한 기본 원칙인 리우선언과 환경실천계획인 ‘행동 의제21’(Agenda 21)을 채택했다.

1991년 마이애미 세계여성회의에서 서로 다른 배경, 지위, 지리적 환경을 가진 1500여 명의 여성들은 현재의 지배적인 개발 방식을 비판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그 비판을 ‘여성행동 의제’(the Women′s action Agenda)로 제시했다. 그 결과 ‘의제 21’의 24장에 ‘여성을 위한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발전을 향한 세계 여성의 행동’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24장은 ‘행동 의제 21’의 성공적 이행은 경제적·정치적 의사결정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 여부와 성 평등 실현을 위한 후속 협약들과 과거 유엔이 채택한 관련 행동계획들의 이행 여부에 달려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지속가능한 생계를 위한 선행조건으로 여성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임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 주장은 ‘북경여성대회 행동강령 K장 여성과 환경’에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이같이 환경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을 여성 의제로 선언하게 된 것은 환경문제가 인류 공동의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산업문명과 가부장제의 뿌리가 동일하고 따라서 이 문명을 넘어서지 않고는 여남 상생(相生)의 사회도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경을 파괴시키는 논리와 성차별을 유지시키는 논리는 이분법적 세계관이라는 한 뿌리를 갖고 있다. 이 세계관에서는 남성적 영역으로 은유되는 이성, 인간성, 문화는 여성으로 은유되는 자연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여성과 자연의 영역은 남성과 문명의 영역보다 열등하다. 환경 파괴의 논리와 성차별을 유지·강화하는 논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생태계 파괴를 거부하는 입장에 서야 할 좀 더 객관적인 사유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도 워낙 편리한 산업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생태계 파괴의 원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생태계 파괴, 환경문제는 범인류적 문제이나 그 영향은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며 대응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환경문제에도 젠더적 접근이 필요하다. 먹거리문제, 건강문제, 지역문제 등 이 하나 하나와 연루된 여성의 고통의 개략적 실상과 여성들의 대응이나 가능한 대응방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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