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가 여는 데생전 ‘Crayonnage’
조각가가 여는 데생전 ‘Crayonnage’
  • 정필주 객원기자 myvirtual@paran.com
  • 승인 2010.05.14 11:28
  • 수정 2010-05-1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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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작열하는 40여 년 조각 이력
윤희 개인전, 피레네산맥 한 귀퉁이 삶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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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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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까지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윤희(본명 정경희) 작가의 개인전은 ‘조각하는 여자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윤 작가는 40여 년간 조각을 해왔지만 이번엔 조각이 아닌 평면 데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Crayonnage’(연필로 그리듯)라는 제목으로 윤희 작가의 최근 데생 작업 7점을 선보인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파리’(2008), 부산 바다미술제(2006) 등에 참여하며 한국에서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는 ‘조각가’ 윤희가 어째서 데생 개인전을 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작가 자신은 “조각가가 너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라고 운을 뗐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저렇게 작은 여자가 어떻게 큰 조각을 하냐고 하는데 나는 아예 인간이 들 수 없는 무게의 작업을 주로 해요. 제철소, 중공업 공장을 찾아다니며 용광로에 던져지기 직전의 강철, 구리, 청동덩어리들을 가져다 가공하는 거지요. 1200℃로 끓는 청동을 부으면서 열기와 연기와 대결한다든지 수 톤의 덩어리를 기계로 운반하고 설치할 때에 다칠 위험을 감수하는 것 등이 힘든 일이죠.”

실제로 극히 일부분의 유명 조각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각가들은 국가나 지방정부 의뢰의 공공사업이나 일부 대기업 외엔 작품을 의뢰하거나 구매해줄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로댕전의 주인공,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카미유 클로델 또한 자신의 작업을 실제로 사주고 후원해주었던 ‘로댕’과의 사이가 틀어지자 곧 간단한 석고 작업마저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조각가들은 경제적 궁핍과 예술작업 활동 자체의 불확실성과 끊임없이 싸워가며 자신들의 예술을 이루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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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작가 또한 이러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건축설계 등을 병행했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토대로 윤 작가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페리오스라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산꼭대기에 자신만의 아틀리에를 빚어냈다. 자택과 겸한 그의 작업실은 피레네 산맥 북쪽에 닿아 있는 코르비에르산 최남단. 그가 작업실을 차린 1998년이나 지금이나 반경 수백 미터 내에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외진 곳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숨겨진 땅’에 자리를 잡고, 버려진 축사를 개조해서 손수 벽돌을 날라 아틀리에를 짓고, 강철과 청동에 앉는 ‘녹’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그녀는 자신을 두드려왔다. 작은 여성의 단단한 삶을 담아낸 조각들은 그 내부에 약동하고 있는 크기와 힘 때문에 도시에선 담아낼 전시공간을 쉬이 찾기 어렵나 보다. 피레네 산맥 줄기를 따라 흐르고 내리는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라난 그녀의 작업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삶의 시간뿐만 아니라 피레네 산맥이 숨쉬어온 시간까지도 호흡할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피레네 산맥의 비와 바람과 소통하고 있는 그의 작품과는 달리 전시를 계기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윤 작가의 작업 6점은 그 긴 호흡을 함께 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8년 한 달 남짓한 한국에서의 조각 전시회가 끝난 뒤 폭 1.5m,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금속조각을 보관해둘 곳이 없어 윤 작가는 현재 작업 6점을 고스란히 자신의 손으로 파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창고를 빌려 보관하고 있지만, 올해가 가면 그마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조각의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윤 작가는 복잡스러운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윤 작가는 조각 작업하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데생으로 조각 작업을 ‘대체’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윤 작가는 80년대부터 데생 작업을 해왔었다. 그 당시의 데생은 설치작업을 위한 구상으로 준비 과정의 성격을 가진 정도였고, 90년대 초반에 100호(162.2×130.3㎝) 사이즈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데생과 조각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조각 작업에 반해 종이 한 장을 펴면 곧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데생의 간단함에 끌렸다”고 말하는 윤 작가지만, 오랜 기간의 ‘주조’와 ‘단철’에 익숙해진 그의 손놀림은 결코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다.

무한한 파도의 반복을 비추고, 피레네 산맥의 긴 탄식을 하늘에 전하는 조각들의 단단한 호흡이, 한순간으로 압축되어 터져 나오는 그의 데생은 기존의 액션 페인팅과는 그 폭발력을 달리한다.

현재 작가의 데생 작업은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조각은 프랑스의 정부기관(FNAC)에 소장되어 와롱성에 설치되어 있다. 전시 장소는 구지갤러리. 문의 053-425-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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