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 신화는 역설적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향해 평생을 노력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을 꼽을 때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게 아이 기르기 아닐까. 아무리 예측하려고 해도 다른 엄마들의 성공담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는 늘 좋은 엄마를 꿈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모습이 영락없이 못된 엄마다. 잔소리로 시작하는 우리 집 아침은 폭풍이 쓸고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다. 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딸들에게 협박한다.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소리나 지르는 무식한 엄마를 만드는구나!”

부모교육을 자주 받는다. 절대적으로 하면 안 되는 일 하나하나가 내가 다 해본 것들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의 잘못도 참으려고 노력하다가 나중에 더 큰 화를 낸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어디서 교육받고 오셨어요?”

당장의 학교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학부모와의 만남 이후나 학교 성적을 받아올 때면 과연 내가 잘 하는지 몰라 초조하고 답답해져 괜히 아이들을 닦달한다. “너, 오늘 할 일 다 했어?”

신체적인 균형을 생각해서 권유한다. “수영 어때?”, 지적인 능력을 키워야 하니 “이 책은 읽는 거 어때?”, 정서적 능력도 키워야 하니까 “기왕 시작한 피아노는 40번까지 쭉 쳐야지?”, 봉사와 헌신도 배워야 하니까 “단체활동도 해보는 건 어떠니?”. 아이가 거절하면 “다른 엄마들처럼 내가 너희들 학원 뺑뺑이를 돌렸니? 나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 그런데 엄마 말을 안 들어?”라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헌신하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는 명분으로 내 일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겐 뭐든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빨래, 설거지는 물론 교복과 실내화도 빨게 한다. 그러곤 말한다. “도대체 하루 종일 뭐하다가 이 밤중까지 숙제를 하니?”

고상한 척, 안 그런 척 하지만 사실 감정 조절이 안 돼 야단치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한다. 게다가 본전 운운하면서 생색을 낸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으로 너희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

나름 개방적인 엄마라고 아이들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대화를 자주 하지만 결과는 부모 시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일장연설로 끝나기 일쑤다. 내 실수는 합리화하면서 아이 실수는 용서하지 않으려는 치사한 엄마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많이 다투고 자주 짜증내고 툭하면 화내는 엄마다. 어릴 땐 어린 딸들(나이 차를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과 신경전을 벌이며 속상해했다. 요즘 사춘기의 중학생 큰딸과는 목이 쉬도록 큰 소리로 싸운다. 이건 비교가 아니고 자극이라고 우기면서 다른 집 아이들 이야기도 한다. 평소 당당하라고 얘기하면서 어떤 땐 건방지게 대든다고 야단친다고 아이들은 얘기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꿈만 꾸었지,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아직 잘 모른다. 시행착오, 좌충우돌이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는 기본 철학을 되뇌는 것으로 겨우 위안 삼는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어제와 다른 아이 모습에서 새로움을 배우기 때문에 오히려 엄마인 내가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다. 끝까지 아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울려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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