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현재까지 분명한 사실은 천안함은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천안함 원인이 나오면 분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천명했다. 더불어, “그동안 우리 내부의 안보태세와 안보의식은 이완돼왔다”며 “안보 대상이 뚜렷하지 않도록 만든 외부환경이 있었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군 내부의 혼란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으로 비춰볼 때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주체가 북한이라는 확실한 조사 결과가 나올 경우, 정부 차원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개념을 재도입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주적’이란 개념은 지난 1994년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 남북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면서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국정의 최고 과제로 삼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인 2004년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직접적 군사위협’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으로 대체됐다. 참여정부의 이런 대북 정책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2006년과 2009년에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와 메트릭스코퍼레이션이 각각 동일한 설문항을 토대로 실시된 통일관련 국민여론조사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주적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는 의견은 2006년 34.5%에서 2009년 25.5%로 하락한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2006년 30.3%에서 2009년 40.9%로 오히려 증가했다. 반면, 북한의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있다’는 의견이 2006년 32.1%에서 2009년 29.3%로 감소했다. 한편, 2009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안보 수준이 ‘위태롭다’는 의견은 20.9%에 불과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안이하고 이완된 안보 의식과 태도 속에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천안함 사고를 당했다. 안보 의식이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기습적인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강한 경제도 강한 안보가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를 한시적으로 구성하고, 안보특보를 신설하며, 위기상황센터를 위기관리센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 안보는 주적 개념을 도입하고 시스템을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다. 여야, 진보와 보수, 당내 계파 모두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안보 의식을 같이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 한·미 간의 국제 공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의 단합을 이뤄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다. 정부는 진정성을 갖고 야당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공조와 협조를 이끌어 내는 일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 안보와 대북 문제와 관련된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들을 이들에게 제공하고 설명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만사에서 보듯이 성의를 다하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있으면 협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정부의 노력과 별도로 국가 발전과 안위를 생각하는 통 큰 정당과 정치 지도자라면 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소탐대실의 유혹을 과감히 끊어야 한다. 국민들도 자신들의 안보 인식과 태도가 왜 이렇게 이완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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