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물가에서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단순 사회 구성원들은 강이나 바닷가를 향하여 가로로 길게 지은 소위  “긴 집”이라고 하는 주거 형태를 가지고 살았다. 요사이도 남태평양 지역에서는 바다를 향한 기다란 집에서 여러 가구가 줄지어 살고 있다.

물은 인간의 생존을 이어오게 한 원천이다. 물은 생명을 주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본 요소임은 물론, 물에서 잡아 올리는 인간의 먹거리는 물론, 뭍에서 나오는 먹거리도 물의 힘으로 생산이 가능하니, 물은 그야말로 생명의 어머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위성은 물을 얼마만큼 담고 있을까? 

지구상에 있는 물의 97.5%가 바닷물이고, 담수는 2.5%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적은 양의 담수 중 빙설이 전체 담수의 80%나 차지하는데 전 지구 물의 양으로 계산하면 빙설이 1.76%를 차지한다. 그리고 지하수가 0.76%, 호수·하천·습지가 0.0086%라고 하는 비율로 지구상에 존재한다. 세계 담수를 실제 물의 양으로 표현하자면 무려 3경5000조㎘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등장한다. 빙설은 2경4360조㎘, 겨우(?) 119조㎘의 물이 호수, 강, 습지를 이루고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인데, 강이 지표면의 물을 함유하고 세계 곳곳의  땅 위의 물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강이 저장하고 있는 물은 이미 언급했듯이 전체 물의 양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양이지만, 인간의 삶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은 빗물과 눈, 또는 높은 산에 위치한 빙설이 녹아 흘러 물을 공급받지만 낮은 곳으로 흘러흘러 결국 바다로 합류한다. 사람들은 강가나 호숫가에 살면서,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었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군락을 이루고 결국 도시라는 집단 군락체를 만들어서 살게 되었고, 2005년에는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드디어 도시에 살게 되었다.

한국 인구의 4분의 1이 살고 있는 서울도 600여 년 전 14세기 말 이씨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한강을 낀 지역에 수도를 삼아 강의 위력을 담은 수도를 선정했다.

선사시대부터 한강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는 크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며 한강을 차지하려 전쟁을 치르며 한반도의 역사를 이어갔다.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한강이 뱃길이 되어 물품을 운반하는 서울 사람들의 젖줄이 되기도 하면서 결국 한국의 수도로 건재하게 됐다.

필자는 한강변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가끔 강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아파트들의 행렬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곤 한다. 왜냐하면 한강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라는 사유재산들이 한반도의 역사를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큰 도시를 보면 강가나 호숫가변은  박물관이나 음악당, 또는 청소년 교육당 같은 공공의 장소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의 거대한 호수인 미시간호 서안에 위치한 시카고 시에 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호숫가를  달리는 자전거 행렬과 푸른 잔디 위에 노니는 시민들의 여유로움에 부러움이 발동한다. 잔디 넘어서 고고하게 서있는 공공건물들 또한 시카고 시민들의 교육, 예술 및 전통의 현장으로 철저히 공공의 장소로 가득하다.

우리들의 한강은 어떠한가? 유유히 흐르며 수천 년 역사의 맥을 이어온 위대한 흐름인 한강이 그 주변의 아파트 주인들의 쉼터로 가득하게 만든 당시의 정책 결정이 아쉽기만 하다. 1970년대에 고고학을 전공하던 같은 과 친구가 한강의 고고학적 연구를 하고 싶은데 한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기 힘들다고 도와달라던 기억이 생생하다. 분명 한강의 역사를 외국인 학자들에게 내놓지 않겠다는 한강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과, 무더기 아파트 공사를 허가해준 정책도 요사이 우리들을 괴롭히는 정부 부처 간의 이기주의가 연계되어 있었던 걸까?

서울에 빽빽한 아파트 숲을 보면 어렵게 이룩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떠올려 보지만 2000년 역사의 본채를 아파트 밑에 묻어버리고 급히 달려온 최강속 산업화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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