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범죄율은 최근 5년간 일정
대선 앞둔 시점에서의 부각 이해 안돼

뉴스를 보면 요즘 들어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출한 친구의 전세금 마련을 위해 앞집에 들어가 살인강도행각을 벌인 아이들, 일본 포르노영화를 보다가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직접 포르노영화를 찍었다는 아이들, 집단폭행 당한 끝에 자살한 아이들, 군기 잡으려고 후배를 때렸다는 아이들, 재미 삼아 여자친구를 담뱃불로 지졌다는 아이들… 한숨이 절로 나올 만한사건들이다.

통신의 토론방에 들어가보면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청소년은 내 동생, 내 친구,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저런 부류의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한다. 자신이 부반장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스스로 ‘날라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섬뜩하다. 청소년들이 언론의 보도를 보며 일부 일탈 청소년의 삶을 청소년의 일반적 모습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일선의 한 교사는 이 시점에서 왜 ‘갑자기’청소년 문제가 부각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실상 ‘총범죄 대비 청소년범죄 구성비’는 최근 5년 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95년 이래 교내 폭력 등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노래를 불러왔다. 95년 정부 부처가 설치한 ‘학교폭력추방본부’는 지금도 있는지, 있으면 뭘하고 있는지, 또 96년 총선 전에도 불거져 나왔던 청소년 범죄 문제가 왜 하필 얄궂게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거져 나오는지, 언론이 진짜 보도해야 할 것은 이런 부분이 아니겠냐고 이 교사는 말한다.

언론은 현상에 대한 사실 보도, 그 이면에 대한 추적 보도의 임무뿐만 아니라 보도로 인해 일어나는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95년 1월 독일의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특종. 함부르크 은행 위기’란 제목의 보도를 했다. 이 제목이 <포쿠스> 지 선정으로 TV에 방영되자 해당은행 고객들이 너나없이 몰려들어 통장을 정리해 이 은행은 정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태까지 가야했다. 1년 후 은행주는 <포쿠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요구 소송을 내 승소했다. ‘은행은 그전부터 이미 어려운 상태였다’는 경영평가회사의 평가서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광고 전까지 정상영업 중이었다’는 은행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

요즘 언론의 청소년 문제 보도를 보면 아직 ‘파산’에 이르지 않은 우리 청소년을 사회적 파산으로 몰아 ‘잘못된 파산 보도’의 전행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벌써부터 그 기미는 보인다. 청소년들은 화장실에서의 본드 흡입이나 10대 소녀의 낙태 장면 등 일탈적 행위를 미화하는 청바지 광고를 멋지다고 느낀다. 어떤 고등학생은 자기도 ‘빨간 마후라’를 찍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까지 말한다.

잘못된 보도로 파산한 은행에야 돈으로 갚아주면 된다지만 잘못된 보도 논조로 오도된 청소년문화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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