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공간에 여성 연대의 장 마련

시라는 창작물도 하나의 지적 소유물이라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는 감히 시를 가지고 놀이를 했고, 그 놀이의 결과물인 시를 이렇게 남긴다. 이 시의 소유권을 우리 세사람이 함께 있었던 그 시간과 그 사이버공간에게 넘긴다. 우리가 실험해 본 이 두 편의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결과적으로 보자면, 고집스러운 세 개의 시적 자아가 각각 분말처럼 떠도는 그대로이기도 하고, 유일한 공통분모인 여성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무의식적 노출 행위이기도 하다.”

젊은 여성 시인들이 PC통신 대화방에서 탄생시킨 두 편의 집체시(詩)를 사이버 문학잡지〈버전업〉여름호에 내놓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PC통신 대화방에서 서로 통신을 나누던 중 의기투합, 시를 통해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약 두 시간 여 걸친 논의 끝에 이들은 ‘남의 밥’이란 시를 한 편 완성했다.

이 모임의 좌장격인 김소연씨는 시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린다.

“전혀 사전 준비 없는 시도여서 우려도 됐지만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런 작품이 나와서 기쁩니다.

또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어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새로운 여성성을 발견했다고 봅니다.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설정한 ‘너’라는 존재는 남성이 될 수도 있고 여성에 대립된 존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너’에 대한 모성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전폭적인 애정이든 혹은 일종의 피해의식이든 모성은 절대적이고도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포근한 것이라고 믿어왔지요. 하지만 우리는 때로는 그 커다란 모성이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을 바라보는 문단의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저 “재미있다”거나 “수다의 수준”으로 일축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작업이 단순한 재미 추구일 수는 없다.

김소연 씨는“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은 아직 소수이고 주류가 아닙니다. 아직은 실험단계이고, 우리의 작품이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 더 가치를 둡니다.”

이들은 크건 작건 남성들과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사회 속에서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이 아닌 아마추어리즘 정신을 고수하며 싸워나가는 과정,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향하는 과정의 징후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밝힌다.

새로운 여성운동이 인터넷등 사이버 공간을 통한 자매애 구축에 희망을 걸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이들은 국내 최초로 집체시 창작을 시도, 선구적 의미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이달 말경 또 한 차례의 모임을 갖고 집체시 창작을 위한 논의를 가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