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국가운영시스템을 정립하여 개혁과제 완성한다”

<여성신문>이 대선의 해를 맞이해 기획한 특집 ‘발행인이 만나본 대선주자 부부’의 대미는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과 부인 정기호 여사가 장식하게 되었다.

특집기획 초기부터 박고문 캠프와 꾸준히 인터뷰를 위한 물밑 접촉을 벌여왔으나, 박고문의 숨쉴 틈 없는 일정상 본지와의 대담이 뒤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까지 경선대회를 목전에 두고 경선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박고문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그 어느 대선주자 부부 인터뷰보다 정치인의 내조자로서의 부인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다.

부인 정기호 여사는 이런 사정을 몹시 안타까워하면서도 진지하고 솔직하며 거침없는 태도로 본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는 박고문의 오랜 정치인생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서 남편의 정치적 신조에 동화된 정열을 보여주었다.

방배동에 위치한 조용한 주택가 한편에 자리한 박고문의 자택은 그의 정치연륜이 알알이 반영돼 있었다. 푸르른 녹엽이 무성한 화초들이 인상적인 화단으로 꾸며진 발코니쪽만 가정다운 여유로움을 풍길뿐, 거실 한가운데를 일렬로 점유하고 있는 소파와 테이블들이 마치 격전을 앞둔 선거사무실을 연상케 했다.

 

- 박고문님께서는 차기정권이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추상적이지만 핵심적인 과제는 새로운 국가운영시스템의 정립, 개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경제의 확대, 정치외교력의 성장, 국민의식의 성숙에 걸맞는 국가운영시스템의 정립은 마치 어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옷을 새로 맞춰 입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도 결국은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만드는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우선 순위를 정한다면 사회 전반, 특히 정치와 관료사회의 부패척결,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되찾을 수 있는 정치풍토 개혁, 물가안정과 폭력추방을 통한 민생안정 도모의 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꼽으시겠습니까?

“첫째, 리더쉽 차원에서 보면 이제 전세계적으로 요구되는 리더쉽은 군림하고 통제하는 군주적 리더쉽이 아니라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 국민과 직접 다양한 국정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설득하며 이를 통해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질과 의지가 있는 리더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적이며 역동적인 리더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차기 대통령은 권위는 있으되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으며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복지 등 다양한 국정 현안에 대해 깊은 이해와 식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제 국가의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다양한 국민의 이해와 국가기구의 이해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역할, 다시 말해 국가 최고 전략회의의 사회자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정·통제 능력은 국민과 더불어 살아온 정치적 경륜 속에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행정경험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까지의 행정은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 그리고 관료사회의 특성에 따른 기계적인 업무처리를 지켜보고 적당히 지시만 하면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본령은 극단적인 이해 대립 속에서도 양자를 조정하고 화해시켜 합일점, 타협점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점차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는 사회의 요구를 수렴하고 조정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수련기간을 거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국가 위기상황 혹은 비상사태라는 말들을 자주 하는데, 난국타개 방안을 말씀해주시죠.

“현재 우리나라의 난국은 경제위기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 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황만을 두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중 우리사회 가치관의 혼란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가치관, 가족관, 윤리관이 붕괴되는 통과비용을 치루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학교폭력·성폭력·도덕불감증 문제와 이기주의의 만연 등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이 붕괴되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위기극복이나 후진적 정치풍토 개선은 우리가 단합하고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앞장서서 길을 찾는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우리사회가 어떤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 지가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경제적 풍요도 강병(强兵)도 덧없는 것이 되기 쉽고 새로운 정치풍토도, 새로운 사회분위기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여성계가 요구하는 여성할당제 수용계획을 밝혀주시죠.

“원칙적으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인사에 있어 지역, 성별 등의 요인에 따른 차별이 없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요인에 따른 불평등이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과도적인 조치로 ‘차별 금지법(affirmativelaw)’적 사고에 입각, 특별한 조치의 시행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비율을 할당할 것인가의 문제는 추후 확정을 짓더라도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단 청와대 비서진 중 일정비율을 여성으로 충원하는 문제는 즉각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기타 행정, 사법부의 문제는 대통령이라고 할 지라도 이를 강제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일단 가능한대로 청와대부터 이를 시행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해당기관과 협조,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항상 여성유권자들에게 인기 높은 정치인으로 꼽히시곤 하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여성들에게 특별히 인기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여성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가 있더라도 이 점이 주요 관심거리로 등장한다는 것은 일부의 왜곡된 사고, 다시 말해 여성은 정치적 판단에 있어 매우 피상적이고 감정적이며 따라서 여성의 지지는 믿을 수 없고 작은 상황 변화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속성을 가진 지지라고 하는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저는 우려합니다.”

- 박고문님이 빈번히 당적을 바꿔오셨다는 일부의 비난에 대해서 본지 독자들에게 해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우리의 정당사, 특히 야당의 역사는 끝없는 이합집산의 연속이었습니다. 80년대 이후만 하더라도 민추협이 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신민주당(신민당)이었고, 이 신민당은 전두환 정권의 내각제 음모에 대응하기 위해 변신하여 통일민주당으로 당명이 변경되었습니다. 그 후이 통일민주당은 김영삼, 김대중 두정치지도자의 이견에 따라 김대중 선생과 그 지지자들이 탈당함으로써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나뉘어졌습니다. 통일민주당은 그후 민자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 민자당이 되었고 이 민자당이 현재 신한국당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현역 정치인들중 김영삼 대통령을 포함, 3선 이상의 여당 정치인들이 80년 이후에만 4번 이상 당적을 바꾸어 왔습니다.

김대중 총재의 지지자들만 하더라도 민추협, 신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연합,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김대중 총재를 포함, 국민회의 중견 정치인들 대부분은 80년 이후에만 최소한 6번 이상의 당적 변경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당적이 바뀌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저도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민추협, 신민당, 통일민주당까지 동지들과 행동을 같이 했고 그 이후로는 87년 김영삼, 김대중 두 지도자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면서 통일민주당을 탈당한 뒤에 총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신정치개혁당(신정당)을 창당했고 이 신정당이 국민당으로 합당됐습니다. 여기에서 빠진 것은 첫 출발인 공화당과 현재의 당적인 신한국당입니다.

이 시점에 와서 따지고 보면 다른 정치인들,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YS, DJ를 포함, 무수한 중견정치인들 보다 당적 변경이 적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분명 몇차례의 당적 변경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사실이 이 나라 정치의 현실이었고 아픔이었고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계, 이 아픔을 제가 적극적으로 깨뜨리지 못한 것 역시 제 과오이고 불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일반적인 현상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특별한 개인적인 결격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고 비난하는데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라도 <여성신문> 독자 여러분들이 이 점만은 이해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경선에서 떨어지시면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듣고 싶군요.

“현 시점에서 경선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대답하는 것은 큰 의미도 없고 이 부분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말초적이고 흥미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궁금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과는 겸허하게 그리고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 부인께선 경선과 대선을 앞두고 요즘 심정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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