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에 밀리는 우리삼베, 건재함을 보여줄 겁니다”
‘우리 것 지키기’ 소신으로 적자업체 견뎌내, 정책적 지원 절실

삼베 제조업체인 오수직물대표 박미란 씨(41). 검은 피부색과 단단한 골상이 야무진 인상을 주는 여사장이다.

제조업만 고집해오던 오수직물이 인천시 구월동에 매장을 마련한 것은 올해 3월. 수의로만 널리 이용돼왔던 삼베를 침구류와 의류 제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직판하기로 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베틀삼베 전시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이 매장에는 침대 커버나 홑이불, 남성속옷, 적삼, 원피스, 남방 등의 삼베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천연섬유 삼베는 인체에 무해할 뿐아니라 수분을 잘 흡수하고 통기성이 뛰어나 여름철 속옷으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삼베시장이 중국산 아마(모시제품)에 밀려 명멸의 위기에 서 있는 현실에서 우리삼베 제품이 판로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베틀삼베 전시장도 현재로서는 매장 운영비 정도의 수입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4년간 제조업만을 고집하면서 경인지역을 비롯한 전국 수의 제조업체 80%에 원단을 제공해오던 오수직물이 이 매장을 마련한 데에는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중국산 아마에 밀려서 우리 삼베가 다 죽었어요.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은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그나마 오수직물이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규모가 크기 때문이었지요. 우리마저 문을 닫으면 이제 우리삼베는 끝이예요. 우리 국민이 우리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적자업체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국산 삼베의 건재함을 알릴 수만 있다면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에서 이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오수직물에서 삼베를 받아다가 수의를 만들어 팔아왔던 거래업체들은 그동안 번창하는 모습을 보아왔던 박미란사장.

“중간업체들은 소비자 가격을 계속 올려 왔지만 우리의 공급 원가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러니 중간업체들만 유통이익으로 돈을 벌고 정작 제조업체들은 쇠락의 길을 걸었지요.” 박미란 사장의 말에는수심이 가득하다.

오수직물에서 우리삼베로 만든 이불을 개발했을 때였다. 유통망이 없는 박 사장은 이 제품을 들고서 시장의 포목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우리 삼베 이불의 판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그러나 박사장은 값싼 중국산과의 가격경쟁에 부딪쳐 좌절해야 했다.

박사장은 최근 병원 영안실에 직접 수의를 납품해보려는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수의 납품에 얽혀 있는 기존 질서에 개입해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로 생기는 병원을 찾아내려니 그동안 제조업에만 전념해온 박사장으로서는 정보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박미란 사장이 삼베제조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결혼과 함께이다. 공무원 집안에서 성장한 박미란 씨는 틀에 박혀 월급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공무원 생활 대신 사업가가 되기를 선망해 왔다. 남편 오영수(43)씨는 우리나라 기계포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오남섭(73)씨의 6남매 중 장남이다. 시부(媤父) 오남섭 씨는 열일곱살 때부터 보성 화순 등지에서 수직 삼베를 떼다가 서울에 팔면서 삼베 영업을 시작했다. 서민들도 수의를 입고 가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오남섭씨는 영등포에 공장을 차렸다. 이후 소음공해가 문제가 되어 공장 이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닥쳤다. 오남섭씨는 공장설비 매각을 앞두고 장남에게 가업을 이어받을 것인지 의사를 물었다.

오영수씨와 박미란씨는 소창기계 돌리는 집이 많은 강화에 1백10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삼베 제조사업에 들어갔다. 당시 4백50만원과 기계13대가 오수직물의 창업자본이었던 셈이다.

강화에서 부부사업가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원적이 호남인 부부사업가는 지역감정에 의한 집단 이지메를 당하는 가운데 사업을 해야 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시키지 않았어요. 동네 구멍가게에서 우리한테는 물건을 팔지 않았다면 말 다했지요. 동네에서 직원을 구할수 없어서 멀리서 친척들을 데리고 와서 직원으로 썼어요. 공연히 시비걸고 , 싸움걸고.... 그런 적지 속에서도 불평않고 우리 힘으로 묵묵히 공장을 키워왔더니 5년이 지나니까 동네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하더군요.”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705 소재 오수직물 공장은 현재 부지 1천여평, 생산직원 24명, 외주 농가 40호의 규모로 성장했다. 또순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부지런히 일한 결과 돈이 모이면 조금씩 조금씩 넓혀온 공장이 15년간 10배로 확장된 것이다. 박사장네 부부는 이제 강화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로 대우받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의 고생을 돌이킬 때면 박미란 사장은 늘 눈시울이 붉어진다.

현재는 매월 1천만원의 적자상태. 은행에서 꾸어 쓴 돈도 무척 많다. 그러나 박 사장은 ‘내가 굶어 죽더라도 사람 도리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은행 이자를 한번도 어기지 않는 것을 비롯해 신용관리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의 철저한 신용을 아는 친척들은 보증을 서달라는 박사장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었다. 부채와 자신이 비슷한 상태라고 회사 재정을 말하는 박사장은 ‘숨길것도 과장할 것도 없다’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내의 억척을 인정하는 남편 오영수 씨는 아내가 온전한 사업가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오수직물의 사업자등록이며 공장과 집의 소유, 매장계약, 자동차 등 모두를 아내 명의로 해두었다.

삼베제조 기술에 있어서는 국내 1인자로 인정받는 오영수씨는 현재 3인 동업 업체인 (주)안동삼베를 운영 중이다. 안동삼베를 안동시의 특산물로 지정해 안동시의 적극적인 지원아래서 성장하고 있는 (주)안동삼베는 순조롭게 성장세를 타고 있다. 안동삼베의 경우를 보면서 박미란 씨는 이제 우리삼베 지키기에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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