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55년만의 홍콩반환,“작은 섬 빌려줬더니 백년만에 나라 만들어 바쳤다”평가

지난 7월 1일 홍콩이 1백55년만에 중국으로 반환됐다. 이로써 ‘5대양 6대주에 있는 영국여왕의 땅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라던 대영제국의 영토는 아시아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직도 오세아니아주의 호주와 뉴질랜드, 북미의 캐나다 등은 상징적으로 영국여왕을 국가원수로 삼고 있다. 또한 영국은 아직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지브룰터해협의 지브롤터항구, 남태평양상의 산타크루즈제도, 그리고 80년대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던 포클랜드제도 등 곳곳에 해외식민지를 갖고있다.

1일자 어느 조간신문은 ‘영국, 밤비맞으며 홍콩 떠나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콧대센 영국인들이 야밤에 도주하는 인상이었다. 자정에 있었던 인수식에는 영국측에서 찰스황태자와 토니블레어총리, 그리고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대처 전총리 등이 배석했다.

오대양에 휘날리던 영국국기인 ‘유니언 잭’이 내려지고 중국의 오성홍기 옆에 새 홍콩기가 올랐다. 교환연설문을 읽고 있던 찰스황태자의 표정이 우울하고 말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16세기 이후 대서양과 인도양을 주름잡던 영국의 국력이 이미 쇠잔해진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에반해 중국측은 벌써 3달전부터 완전 축제분위기였다. 기자가 6월 23일-26일 북경에 체류하는 동안 보았던 천안문 광장은 전쟁을 이긴 개선분위기였다. 모택동사진이 내려다 보고 있는 천안문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과 축하공연을 위한 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카운트다운이 날수와 초로도 기록되고 있었다. 북경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왕부정거리의 가드레일에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깃발이 연이어져 있었다. 곳곳에 ‘세설백년국치 희경향항회귀 실행일국양제 공창미호미래(洗雪百年國恥喜慶香港回歸實行一國兩制共創美好未來)’라는 표어가 나부꼈다.

“지난 1백년의 국가적 수치를 씻은 홍콩반환을 기뻐하자. 한나라 두 체제를 실행해나가 함께 좋은 미래를 만들어나가자”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느끼는 수치는 우리로서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1842년 영국의 애로우호가 광동지방을 올라와 함포사격을 하면서 시작된 아편전쟁에서 중국군은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분명히 중국인에게 나쁜 아편을 엄청난 이익을 남기면서 팔고 있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던 중국으로서는 두번 당한 것이다. 8월에 남경에서 맺은 조약은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며 광주와 상해 등을 개방하는 일방적인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때부터 중국은 국제사회의 ‘종이호랑이’가 됐다. 프랑스는 월남을 넘어 운남, 광동지방으로 올라왔다. 포루투갈은 마카오를 할양받았다. 독일은 산동반도와 청도를 조차했다. 이때부터 독일인에 의해 제조된 것이 중국산으로 유명한 청도맥주다. 러시아는 만주로 남하해 여순, 대련을 먹었다.

일본은 188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후 대만을 먹었다. 영국도 청일전쟁후에 청나라를 협박해 홍콩섬에 이어진 구룡반도와 신계지를 1백년간 조차했다. 영국으로서는 당시 1백년간이라면 영원히 자기영토가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영국의 힘이었다면 영구임대도 가능했을 것이나 국제사회의 관례에 의해 1백년으로 끊었을 것이다. 그 1백년이 이번 6월30일로 끝난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 1백년간을 외세가 자국을 침탈한 수치로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인은 홍콩반환을 이렇게 평가했다.

“조그만 섬을 빌려 줬더니 백년만에 나라를 만들어 바쳤다.”

어찌할 수 없는 중국인다운 자부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은 몰락했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계의 경찰이라고 우쭐대는 미국과 맞상대하고 있다.

어려운 것은 우리다. 세계 양대세력의 영향력하에 있는 남북한이 힘을 합해도 헤쳐나가기 힘든데 대화조차 힘드니 말이다. 지난 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1백년의 끝을 보면서 냉전의 마지막 전탱터인 우리를 되돌아보면 씁쓸해진다. 우리도 언제나 통일의 축포를 터뜨릴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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