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엔 의회민주주의가 꽃펴야 합니다”

<여성신문> 발행인이 만나 본 대선주자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이다. 박영옥 여사는 몸이 불편한 관계로 참석하지 못해 김총재만 자민련 총재실에서 만났다. 김총재는 이자리에서 “여성의 재능과 특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성할당 30%가 적당하다”고 말했으며 “정신대 문제는 정부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 현재 위안부 할머니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총재의 평등부부 점수를 묻는 질문에는 “재산권 공동소유를 제일 먼저 주장한 사람”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 먼저 여성관련의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총재님께서 가장 공을 들인 여성관련 실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실적이라고 해서 두드러지게 한 건 없습니다만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기반을 유형 무형으로 만든 게 사실 아닙니까. 저는 여성을 특별히 내세워서 한 것 보다는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토양 만드는 데 지난 30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토양이 갖춰지니까 활동의 범위를 더 넓혀달라, 질을 더 높여달라, 수요를 더 만들어 달라는 주장을 할수 있게 된 거 아니겠어요? 이런 주장부터가 여성의 지위가 확고해졌다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저는 여성을 위해 꼬집어 뭘 했다기보다 이 나라 전체에 그 토양을 만드는 데 노력해왔고 그 토양 위에서 여성들이 주장할 수 있게 된 거라고 봅니다. 이제 그런 주장들이 하나둘씩 받아들여질 겁니다.”

- 여성계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문화 각 분야에 여성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 할당제를 적극 주장하고 있는데요. 총재님께서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할당정도를 말씀해 주시지요.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20-30%를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여성들만이 지니고 있는 특기와 재능이 있다고 봐요. 그런 것을 적어도 30%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활용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우리나라의 발전은 더욱 촉진되고 깊이도 더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할당정도는 30%는 돼야 할 것 같은데요.”

- 여성할당에 대한 생각은 평소 신념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민주공화당시절 여성의원들을 국회에서 가장 많이 할당했습니다. 헌정역사상 전체 국회의원들 가운데 여성비율은 3%도 안될 걸요. 아직은 지역에서 여성계의 정계진출에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다행히 비례대표가 있기 때문에 의사만 적극 표시하면 됩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여성할당의 실현은 집권책임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 현재 자민련의 고위당직자 가운데 여성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주양자 부총재, 고순례 총재특보,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난번 선거에서 여성들을 전국구에 한명도 배정하지 못한 걸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 최근 ‘훈’ 할머니 생존 소식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일본은 63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협상이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이 협상에 깊이 관여하신 총재님으로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60년대는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거론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도 안됐어요. 피해 여성들도 상처를 뒤적거리는걸 싫어했어요. 그분들이 그때는 젊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은 아프지만 원인을 알고 결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신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자료를 당시에는 얻기도 힘들었어요. 이런 이유로 이 문제를 따지지 못했던 겁니다. 제가 기초부터 관여한 한일 청구권 협상에서는 한일관계의 내용을 전부 손댄 것이 아니라 일괄해서 총액교섭만 했어요. 협상에서 무상 3억 유상 2억, 사건별로 1억 플러스 알파로 체결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뭘 해줄 수도 없었어요. 그 뒤로 이 문제가 새롭게 나왔을 때는 제가 책임있는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해결방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도 없었지요. 이 문제는 전적으로 국가차원에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에서 이분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해줘야 하고 일본과의 관계는 별도로 추진해야 합니다. 일본의 배상을 받아내야 합니다. 차일피일 미룰 게아니라 김영삼정부는 약속한 대로 뒷처리를 해야지요.”

- 민간차원에서 할머니 돕기 모금운동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총재님께서는 기금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있으십니까.

“저도 이미 모금운동에 참여했습니다.”

- 김총재님은 ‘과거의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데요, 이를 극복할 전략이 있나요?

“과거, 성장기에 가졌던 나름대로의 저항, 이런 걸 기조로 아직도 생각하는 게 많은 거 같은데요, 당시의 논리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의 논리로 과거를 따진다면 괴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먹을 것 없고 희망이 없던 당시의 극한 사정을 지금처럼 달라진 세상의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까요. 우리가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먹고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5.16혁명 끝나고 나서 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64년 12월 1억불을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었어요.

60년대는 식량해결, 70년대는 공업화, 이런 식으로 단계별 발전계획을 세워 전력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외부상황이 어떠했느냐면 월남전 이후 아시아가 어렵다고 해서 미국에 기대지 말고 너희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닉슨대통령의 선언이 있었잖아요. 적은 힘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뭉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온 게 예비군 아닙니까.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72년 중공에 들어가 국교 수립하려고 했지요. 우리와 상의도 없이 국교를 맺는다고 하니 온통 지구상의 이목이 북경에 쏠렸어요. 그때 김일성은 ‘내년에 내 환갑잔치는 서울에서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서 땅굴을 팠습니다. 이런 걸 보고 대통령이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또 내부적으로 식량이 어느 정도 해결되니 내 권리 내놓으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지요. 이런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시적인 위기관리기구를 만들어 자유나 민주는 참아 달라고 하면서 공업화를 이뤄내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 뒤 70년대 공업화를 예정대로 밀고나가 78년 1백억불 수출을 달성했습니다. 이걸 놓고 가타부타하는 건 관념적인 민주화니, 자유니 하는 것을 외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내포하면서도 70년대 과감한 공업정책을 수행한 결과 오늘이 있는 겁니다. 3천억불의 무역고는 우리국민들이 참고 노력해 준 결과입니다. ‘어제 뭐했느냐?’물으면 ‘난 어제 논리에 충실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논리에 충실하겠습니다. 어제를 저는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내일을 위해 적당히 지내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최선을 다한 것이 오늘입니다. 오늘은, 또 내일의 아버지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짓들을 하면서 그게 진리이고 진보라고 하다니, 말이 안됩니다.”

- 정말 보수적이시네요.

“그래요, 나 보수예요.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20대에 왼쪽에 서보지 못한 건 하트가 없다고 하지요. 정열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원 위치로 돌아오지 않으면 브레인이 없는 겁니다. 지금도 왼쪽에서 이게 하트다, 정열이다 하는 사람하고 냉철하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나름대로 마음을 정해 나아가는 경지의 사람을 동렬에 둘 순 없어요.”

-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요.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21세기는 의회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정치관만 통한다면 단일화할 수 있지요. 우리는 내각책임제가 목적입니다. 그런데, 저쪽에서는 대통령이 목적이에요. 잘못하면 이제까지의 복제판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내각책임제를 하기위해서는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양당이 서로 접근해야 해요.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 내각제 개헌이 과연 최선이라고 보십니까.

“이제까지의 대통령은 항상 마지막에 불행했습니다. 한사람에게 절대권력이 모아지면 반드시 독재가 돼요. 독재, 독단, 이건 뭐 공식이 있는 것처럼 부패가 됩니다. 그다음은 불행이지요. 대표적인 경우가 노태우, 전두환씨 아닙니까. 김영삼씨도 돈 한푼 안받겠다, 사정이다 하며 괴롭혀 왔는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가신들과 아들이 부패했고, 자신이 총재로 있는 신한국당은 지난 4년간 1천1백억을 받았습니다. 후원회들도 몇백억씩 받아냈습니다. 야당에는 한푼 오지않는 돈이 절대권력에는 집중되는 겁니다. 돈은 기업입니다. 정경유착은 절대 권력과 관계있을 뿐이지, 내각책임제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국민들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 “연습하다 망친 경제 자민련이 바꿔보자”는 플랭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던데요, 김총재의 경제해법은 무엇인가요.

“경제사정이 나빠지는 건, 대부분 경제 외적인 요인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경제논리대로 생성이 보장되는 정치적인 뒷받침이 필요한데, 지난 4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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