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성폭행한 피해자 여고생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이 가해자

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지법 판결을 두고 여성단체가 “문제

있는 판결”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최영애)는 지난 12월24일 성폭행 피해자 여

고생과 결혼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

울지법의 판결에 대해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피해여성의

의사를 무시한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는 내용의 입장을 26일 발표했

다.

성폭력 상담소의 첫번째 입장은 “성폭력=순결상실”에 대한 우려

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순결상실로 간주되고 순결을 잃은 피해자

는 더이상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가해자외에 다른 사

람 앞에서는 당당할 수 없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결과라는 측면에

서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무언가 손상된 존재로 파악하는 지금까지의 이러

한 시각은 피해자가 피해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어왔다는

것.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벌써 4년이 지났고 정조에 관한 죄라

는 규정이 잘못되었음이 인정돼 법조문에서도 그러한 표현이 삭제된

지금,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성폭력피해를 폭력에 의한 피해라는 것

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 시대착오적 판결일 뿐만 아니라 극복과정

을 밟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을 또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견

이다.

“범죄를 저질렀어도 책임만 지겠다면 괜찮다”는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판결은 강간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

도 가해자가 책임지겠다고만 하면 충분히 정상참작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범죄를 합법화해버린 꼴이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의사는 과연 얼마나 고려됐는가에 대해서도 성폭력상담소

는 문제로 지적한다. 피해 여고생의 의사는 없어지고 가해자, 피해자

부모, 재판부가 피해자한테 좋은 해결방식을 마음대로 결정해 버린

셈이라는 것. 피해 여성의 의사결정권은 법에 의해 존중받고 보호되

어야 할 인권이며 재판부는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님에도 불구

하고 재판부는 스스로의 의무를 방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성

폭력상담소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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