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열망, 그러나 성욕은 금기시
다산 열망, 그러나 성욕은 금기시
  • 이태호/ 전남대 교수, 미술사
  • 승인 2017.09.27 14:52
  • 수정 2017-09-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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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구룡계곡의 여근석

인왕산의 여근석과 무악의 남근석처럼 자연 암반이나 바위의 형상에 따라 성기신앙물로 여긴 사례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만큼 성신앙적 민속이 발전한 까닭이다. 남근석의 경우는 바위가 둥글고 귀두의 형상과 닮은 꼴을 찾는게 통례이며, 여근석은 바위틈이나 구멍, 혹은 바위계곡이나 옹달샘 등을 신앙처로 삼는다. 그 외에도 사람모양의 바위를 애기바위 기자석(祈子石)으로, 몸통이 불룩한 형태의 바위를 간혹 여성으로 삼아서 남녀를 한쌍으로 배치하거나 암수가 결합된 경우도 있다.

남해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의 선돌 한 쌍은 암수 미륵형이다. 6m 가량의 남근석은 발기된 귀두모습이 기형으로 길고, 여근석은 임신한 여성의 형태이다. 음력10월 23일에 치르는 미륵제의 대상인 두 선돌은 둥글면서 미끈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천안 봉명동 봉서산 중턱에 나란히 옮겨다 세운 남근석과 여근석은 2.5m로 남해의 그것과 유사한 의미와 형상을 보여준다. 또 경남 의령 칠곡면 신포리의 선돌은 칠성바위라 일컬어지는데, 2.5m의 남근석(자지바위)과 성혈이 크게 난 여근석(공알바위)이 함께 암수성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근석으로는 의성 탑리에 다시 세운 남근석(이 연재 4회때 소개, 본지 1996년 8월 23일자)이 귀두모양의 빼어남을 자랑한다. 또 영동 용산면 부상리 큰골마을의 선돌은 ‘할아버지’로 불리우는데, 마을 입구 도로변에 한 쌍이 배치되어 마치 장승처럼 서있다. 정월 14일밤에 동제를 지내는데, 한 쌍 모두 남근의 형상에 근사한 편이다. 남원 산내면 입석마을의 선돌은 귀두부분이 묘하게 떨어져 나가서 방향에 따라 남근석을 닮아 있다. 이 마을의 선돌은 두개의 바위가 붙어 암수가 결합된 성석(性石) ‘ 씹바위’형상이었으나, 이웃 원천마을 사람들이 자기 마을에 해를 끼친다 하여 몰래 한쪽 바위를 언덕 아래로 밀쳐 놓아 지금의 남근석형이 된 것이라 한다. 이외에 나주 남평 동사리의 자연석 선돌에는 그 양기가 빠져 나가지 말라는 의미로 귀두부분에 짚을 삿갓 모양으로 짜서 덮은 사례도 있다.

이처럼 선돌을 세우고 성기 신앙처를 삼은 남녀성석은 인공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적 조형물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 미술의 개념으로 보면 예술작품으로 간주해도 될만큼 훌륭하다. 다시 말해서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개념 중의 하나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일만이 아닌 ‘찾아낸 물상’혹은 ‘발견된 대상(Objet-trouve)까지 포함시킨 점을 감안할 때 그러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다다이즘의 주요 작품으로 거론되는 마르셸 뒤샹의 <샘>(1917)이다. 이작품은 도기회사에서 생산한 변기를 가공없이 전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이른바 ‘오브제 미술’이라는 미술사조를 촉발시켰다. 이후 최근의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그와 유사한 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현대미술이 무의미하게 일상의 대상을 찾거나 철저히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흐른 점에 비추어, 우리 선조들이 성기신앙의 조형물을 찾았던 일은 생활 속의 문화이고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상징성을 부여한 점에서 오히려 환경예술 혹은 공공예술로서 그 가치가 더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그런 개념에 빗대면 남근석이나 여근석을 포함한 선돌문화는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이미 설치미술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들이 서구식 설치예술 내지 현대미술의 사조를 흉내낼 것이 아니라 먼저 조상들의 선돌문화에서 예술이념과 형식을 배워야 할 일이다.



성기조형물은 오브제·설치미술의 선구자격



앞서 관악산 삼막사나 인왕산 선바위 근처의 여근석 등에서 살펴 보았듯이 여성성이 지닌 대지의 개념 때문일까, 여성 성기 형태의 신앙처는 대상을 이동시키거나 드러내 보이기보다 대체로 산속이나 계곡, 옹달샘같이 마을 깊숙한 자연물에서 찾는다. 남근석이나 선돌은 현대미술의 개념과 유사하게 ‘찾아낸 오브제’를 옮겨 놓은 것이지만, 여근석이나 여근곡은 자연에 있는 장소에서 ‘발견한 이미지’(Image-trouve)로 민속예술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판소리 <변강쇠가>를 보면, 여성의 성기를 노래한 사설이 남성을 표현한 것보다 한층 외설스럽고 자연물에 빗댄 이미지의 비유가 풍부하다.



천생 음골 강쇠놈이 여인 양각 번듯 들고 옥문관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다, 맹랑히도 생겼다,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파이었다. 콩밭 팥밭 지났던지 돔부꽃이 비치었다.도끼날을 맞았던지 금 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 옥답인지 물이 항상 괴어 있다. 무슨 말을 하려 관대 옴질옴질하고 있노. 천리행룡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갤는지 혀를 삐쭘 빼었으며, 임실 곶감 먹었던 지 곶감씨가 장물이요, 만첩 산중 으름인지 제라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을 먹었던지 닭의 벼슬 비치었다. 파명낭을 하였던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여근석으로는 제천 송학면 무도리의 ‘공알바위’나 괴산 청천면 이평리의 ‘장수바위’, 예산 수덕사 뒷산의 ‘각시바위’등이 비교적 거암(巨岩)으로 손꼽힌다. 이들 가운데 제천의 공알바위가 마을 입구에 있어 마을 공동체의대상으로 삼는다. 정월 초 이틀에 동제를 지내고 금줄을 치게되는데, 그 이유는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만큼 이 여근석은 둥그스런 형태감이 빼어나다. 마을 입구 길가의 자연 암반이 불룩하게 드러난 바위에 1.5m 폭의 구멍이 타원형으로 나있고, 그안에 직경 1m 정도의 계란형 바위가 들어 있어 그 형태가 이름처럼 여자성기의 음핵인 ‘공알’형상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서 돌을 던져 넣는 풍습도 남아 있다. 장성 백양사 대웅전 윗쪽의 옥녀봉(玉女峰)은 해질녘이면 여자 나신형태가 은근히 떠올라 부처의 남성성을 위로해 주는 듯 하다.

또한 바위구멍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여근석의 예로는 경주 남산의 알바위나 영암 월출산 구정봉의 알바위와 용샘 등을 들 수 있고, 외에도 우리의 산천 어느 곳이나 유사한 형태에서 여성 성기 혹은 성신앙터를 삼았던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무덤을 쓰는데 여자 성기 형태의 음택지를 선택하듯이 대지나 산곡 전체에서 형상을 취하는 경우까지있다. 그 유명한 곳이 신라 때 선덕여왕의 일화가 전하는 경주 건천의 여근곡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세 가지 일화 ‘지기삼사(知幾三事)’중의 하나로, 백제군이 여근곡에 매복한 사실을 알아채고 공격을 시켜 승리했다는 것이다. ‘남자의 발기된 성기가 여성의 음부에 들어가면 죽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빗댄 지혜로운 판단이 기술된 일화이다. 경부고속도로로 대구에서 경주를 내려가다 오른쪽 산기슭에 여성의 음부 모양을 이룬 곳을 만날 수 있는데, 오전 햇살에 성기 형태의 이미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다 성기의 벌어진 모양에 따라 계곡의 솔밭과 잡목 숲이 구분되고, 음핵에 해당되는 곳에 샘이 있어 그야말로 성신앙터로도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이처럼 대지 혹은 산계곡의 흐름에서 남녀 성기의 이미지를 형성한 것으로 점찍는 곳은 영암 월출산 도갑사 계곡의 ‘자지골’과 ‘보지골’, 혹은 ‘씹박골’이다. 이곳은 근래까지 마을 동제가 행해지던 장소로 풍수가들이 지적하듯이 순정스런 맑은 마음이 아니면 그 형태가 눈에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 비추어 여근곡보다 자연지형물에서 여성성기의 이미지를 찾는 일은 암반이 형성된 위에 물이 흐르는 장소가 최상일듯싶다. 그 대표적인 곳이 지리산 기슭에서 남원 주천면 호경리(湖景里)의 여근석이다.

우리나라 민속 가운데 노골적으로 성기형상을 드러내고 숭배하는 성신앙이 유행한 실상을 보면, 대단히 개방적인 점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막상 현실의 성의식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때론 금기시하여 소중히 여기기도 했고 건강한 성윤리관도 뚜렷 이하였다.



암반 위 물 흐르는 곳이 여성성기 이미지 최적



예컨대 남근석을 세운 이유 중의 하나가 지세의 음기를 누르기 위한 것이었고, 여근석 구멍에 막대기로 장난치거나 함부로 훼손하면 마을 사람들이 바람이 나거나 재앙을 입는다고 생각해왔던 점이 그렇다. 또한 남녀근석을 놓고 이웃마을 간에 갈등도 여러 곳에서 표출되기도 하였다. 남원 산내면 입석리의 남근석 손괴, 남근석과 여근석이 나란히 있던 장흥읍 평장리의 여근석을 인근 강진 풍동마을 사람들이 자기마을의 기력을 빼앗긴다 하여 훔쳐 갔다는 일화도 그러한 사례이다. 그런데 금기의 대상이 대부분 여성과 관련된 점은 연약한 여성보호의 의미도 있겠고, 여성의 부정을 각별히 금기시 여겼던데서 형성된 결과로 보인다. 물론 유교문화 속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도 연관되리라 여겨진다.

그처럼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소중히 여긴 금기의 장소로서 그 전형을 남원 주천면 호경리 내춘마을의 여근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원에서 정령치, 노고단으로 오르는 구룡계곡의 입구인 이 마을은 지금은 여름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광객을 맞는 음식점과 민박촌들이 즐비하지만, 옛마을은 지리산과 주천의 너른 들녘을 기반으로 생활이 풍요롭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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