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대표부·한국정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 안해

일본군 군대위안부였던 것이 확실한 ‘훈’할머니 이야기를 둘러싸고 혈육찾아주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정작 이에 발을 벗고 나서야할 정부와 프놈펜대표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한국일보>를 통해 노모와 동생등이 살아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다른 언론에서는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대검찰청이 혈액, 머리카락, 손톱 등을 채취해 유전자감식을 하겠다고 나섰다.

1주일여 언론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떠들어댈 때도 외무부는 ‘강 건너 불’이었다. 취재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한심스럽다. 이내용은 프랑스 통신사인 AFP가 타전한 것이다. 한국인 군대위안부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신문 방송사에는 세계 4대통신사에서 하루에도 수천건의 기사를 텔렉스로 보내온다. 외신 담당기자가 이중에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이나 경제정치적으로 뉴스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낸다. 외신기자가 흔히 놓치기 쉬운 지방판 마감시간인 오후께 이를 잡아냈다. <한국일보> 국제부에서는 외무부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 프놈펜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박경태대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대사는 “훈할머니가 17~18세에 끌려왔다는데 우리말도, 자신과 부모형제의 이름도 모른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갑니다”며 본인이 위안부라고 말하지 않으니 성급하게 단정하지 말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결국 대표부에 이 할머니를 소개한 사업가 황기연씨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내용을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한국일보>를 비롯, 언론사에서 현지에 기자들을 특파해 면담취재가 이어졌다.

황기연씨에 의하면 이미 프놈펜 대표부에 군대 위안부 확인을 위해 수차례 진정을 했고 지난해 11월과 올해 5월 2번에 걸쳐 훈할머니를 대동하고 대표부를 방문해 면담을 했다는 것. 그러나 대표부에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진상조사는 그만두고 외무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뒤 위안부 출신 할머니와 불교 ‘나눔의 집’혜진스님이 프놈펜에 가서 만나고 왔는데도 외무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향이 경남의 진동면이라는 설이 나돌아 현지사람들이 ‘혈육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군대위안부 문제는 물론 한일간 외교의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일본정부는 지난 65년 한일협정에서 국가간 배상은 물론 개인적 피해에 대한 보상도 끝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제는 진상규명과 책임인정의 부분이다. 아직도 일본정부는 “위안부나 강제노동의 경우 관이 아닌 민간업자가 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 측에서의 배상이나 보상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책임은 없으나 한껏 나가 ‘인도적’인 입장에서 기금을 만들어 올해초 개인에게 전해주다가 말썽이 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기때문에 “한국인들은 왜 지난 과거문제를 가지고 진상규명, 사죄, 배상 등 계속 떠드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반한 감정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훈할머니와 같이 강제로 끌려가 54년간이나 외국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과거문제인가. 징병과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어 유족들이 끌려간 날짜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잊어버리겠는가.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라는 구호는 현실호도다. 양국정부는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한다. 일본이 싫다면 우리정부가 나서서 일제때 끌려가 생사를 알수없는 우리국민의 진상파악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국민에게 해주어야 할 당연한 의무다.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수요일마다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때면 전경들이 일본대사관을 지킨다. 우리정부가 할 일이 고작이건가. “정부가 남인가”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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