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경쟁보다 지속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

지난 13일 외신으로부터 캄보디아에 한국 위안부 출신 할머니가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아 <한국일보>가 보도를 하면서 ‘훈’할머니의 존재는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 시작된 신문사간의 특종 경쟁으로 할머니의 이름은 무려 6개가 되었다. 캄보디아 이름인 훈, 일본군 장교 다다쿠마가 지어준 이름인 하나코, 창씨개명한 가와리 어니코와 아버지의 원래 성씨였다는 ‘장’, 그리고 언론이 ‘찾아준’이름인 김남아와 김남순, 그나마도 <한국일보>가 찾아낸 ‘김남아’란 이름에 다른 신문사가 의문을 제기하며 제각기 다른 이름들을 찾고 있어 할머니의 이름은 더 늘어날 추세다.

남이 안 쓴 기삿거리를 발굴하려는 것이 언론의 특성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확인보다 앞질러 보도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이번 ‘훈’할머니의 경우에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려는 언론의 열성이 지나쳐 정확한 확인을 하기 전에 보도가 나가 물의를 일으킨 경우다. 그러나 부정확한 보도는 아무리 남보다 빨랐다 하더라도 제살깍아 먹기 이상이 아니다. 말을 아끼고 이문제의 본질을 짚어 정확히 보도하는 언론이 신뢰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훈 할머니의 이름과 가족 찾기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고 해서 모르는 사실은 아니지만 훈 할머니 문제의 근원은 군인들의 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어간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일본 패전후 아직까지 미적거리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하고있는 한국정부에 있다.

20만명이 넘는다고 알려진 위안부들 중 생존과 거주지가 확실히 파악되어 생계지원대상자에 포함된 사람들은 모두 1백57명. 제2, 제3의 훈 할머니가 언제 나올 지 모를 이런 현실에서 훈 할머니 이름을 찾으려다 다른 수만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이름이 영영 잊혀지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여기서 위안부 문제의 지속적 이슈화야 말로 특종보다 중요한 언론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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