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발이는 생기가 많이 가셨다.

“엄마는 최악이야.” “최악 아닌 엄마는 어떤데?” “엄마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야, 엄마가 네 인생에 도움되라고 있는거니?”이런 논쟁도 뜸하게 됐다. 생각해 보니 요즘 어발이와 나는 이런 말할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일주일에 하루씩 학원간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일찍 오는 해방공간이 있었는데 어느 틈에 그 하루를 자진 반납하더니 그 다음에는 수학 과외받으러 학원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며칠째 감기 몸살을 앓고 있다. 멀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어머니한테 배운 매우 인상적인 표현인데 아이들이 아플 때면 아프다는 단어 대신 “멀미한다”고 그러신다. 잘 자라는 듯싶다가, 잘 크는 듯싶다가도 울컥울컥 멀미를 하는 일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옛 어른들이 생각한 것 같다. 성장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므로. 어발이는 말 그대로 멀미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반란을 거듭하면서 숨가쁘게 적응하는 듯했는데.

고1 아이의 방안 진풍경

오랜만에 어발이의 방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워낙 작은 방이기는 하지만 발디딜 틈이 없이 널려 있다. 새벽 6시 몇분에 튀어 나가 밤 10시면 돌아와서 숙제 하기 바쁜 아이에게 방을 치우면서 살라고 말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두었다. 그렇다고 내가 치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여름방학을 할 때까지 그냥 기다릴 참으로 있었는데 담임 면담을 앞두고 무슨 이야기 거리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이 방이라도 한번 들여다본 것이다. 방에는 내팽개친 바지와 티셔츠, 웬 이광수의 소설집, 자율학습 고등 국어, 교육방송 EBS 수학 특강도 방바닥에 뒹굴고 있다.

한쪽 벽은 ‘노우 다’와 ‘건스 앤 로지즈’라는 록그룹의 포스터가 차지하고 있다. 그 위에는 초등학교 1학년때 그린 액자가 낯설게 걸려 있고 다른 한쪽 벽은 맥 라이언의 사진이 온통 차지하고 있다. 그 앞 컴퓨터 모니터 위에는 자기반 여학생이 생일선물로 손뜨게를 해서 준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머리에 꽃을 달고 앉아 있고 그 옆의 음악장 위에는 ‘휘트니 휴스턴’, ‘앨라니스 모리셋트’, ‘스파이스 걸스’등의 포스터가 도르르 말린 채 쌓여 있다.

그리고 책상위에는 기본 공통수학의 정석, 실력 공통수학의 정석, 새과정 공통수학의 정석, 기본 공통수학의 정석… 무슨 공통수학의 정석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것도 모자라서 수능 공통수학, 수능 해설 공통수학…. 이름도 비슷한 수학 참고서가 주르르 꽂혀 있다. 그 옆에는 30년도 더 전부터 낯익은 성문 기본영어. 다른 한쪽에는 더 이상 정리가 불가능한 CD와 카세트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또 한쪽에는 기타가 내동댕이쳐 있다. 고등학교 1학년짜리의 정리 안된 욕망과 좌절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학교에서 십수년 강의를 하는 나도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면 긴장하게 된다. 단체로 담임선생님 얼굴을 뵌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대면하기는 처음이어서 “어발이 에미됩니다.” 이렇게 우리 어머니가 하던 식으로 해야 하나 “어발이 엄마예요” 이렇게 젊은 엄마들처럼 발랄하게 이야기해야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어발이 녀석이 “담임선생님 만나거든 입을 꼭 다물고 듣고 있기만 하라.”고 주의까지 주었기 때문에 주눅까지 들었다.

어발이는 무엇보다도 엄마가 교수티를 낼까봐 걱정인 듯했고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모범생티를 내고 있는 자기의 본 모습이 탄로날까봐 걱정인 듯했다. “괜히 어떻게 해서 머리를 박박 깎았다느니 그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것”과 무조건 “예예”하고 오라는 당부를 거듭했다. 담임선생님은 다행히 그렇게 꼭 막힌 분 같지는 않았고 어발이에 대해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는 듯 했다. 성적도 괜찮고 적응도 잘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모두였다. 아주 싱겁게 그리고 아주 짧게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 끝났다.

재미있는 아이들은 어디에?

학교에서 아이들 속에 섞여 앉아 있는 어발이의 모습은 뜻 밖에도 낯설었다. 엄마를 골려먹는 장난기도 싹 가셨고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아이를 찾지 않았다면 같은 교복에 엇비슷한 머리새를 한 아이들 속에서 자기 아이 찾는 일도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어발이가 집에 와서 거명해 준 그 모든 재미있는 아이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고1짜리 여학생이 얼마전 지나가듯이 던진 이야기가 생각났다. 요즘 고등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촬영한다고 어느 방송국에서 와서 2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먹는 광경을 연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생각이 딱 고정됐다니까요. 그 정도가 무슨 대수라고. 우리는 학교를 ‘새우잡이 배’라고 부르는데. 학교건물이 강제 노역을 하는 새우잡이 배 같다고요. 창문에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마치 구출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구요…. 우리의 교육영화를 찍는다면 그런 장면으로 시작할 거예요.”라고 말했었다. 어른들과 아이들은 서로 다른 부호를 쓰고 있다.

신문도 TV도 볼 시간이 없는 어발이에게 전날밤  9시 뉴스이야기를 했다.

“어느 고1 여고생이 1등한 상태에서 행복하게 죽고 싶다고 했는데….”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는데 “정말 죽어 버렸구나.” 그러면서 학교로 달아났다. 나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어발이는 별 이상한 일이 아닌 듯이 응수하고 버스를 놓칠까봐 내달았다. 아무리 여건이 나빠도 “그래도 아이들은 자란다.”는 교육현장에 계신 은사의 말씀을 믿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고1 짜리 여학생이 1등을 한 상태에서 행복하게 죽고 싶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버린 뉴스를 보면서 ‘아이들은 그래도 자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녁에 어발이에게 1등 한 번 하고 ‘행복하게 죽은’아이가 화제였겠구나 했더니 “그런 얘기 하는 애도 없던데요 뭘. 뉴스 볼 시간이 있나요?”라고 한다.

아 참!! 그런데 그들은 같은 고 1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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