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의회와 내각구성에 여성 대거 진출

 

지난 5월 초 치뤄진 영국 총선과 이어 발표된 토니 블레어 신임 총리의 내각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한 고무적 사건은 도버해협을 건너면서도 그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총선에서 우파를 누르고 승리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신임 프랑스 총리의 새 좌파 연립 내각에서도 여성들의 괄목할만한 진출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북유럽에 이어 이제 서유럽에도 여성들의 중앙무대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의회와 내각에 여성들이 예상 외로 압도적으로 진출한 데에는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 있어 크게 두가지 공통요인을 들 수 있겠다. 우선 남성정치인들에 의한 각종 비리와 경제불황으로 인한 실업율 급증 등이 기존 정치판에 대한 회의를 일으켰고, 이것이 곧바로 여성에 의한 좀 더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을 기대하게끔 했다. 프랑스의 한 여론조사기관에 의하면, 자신의 선거구에서 여성 당선을 희망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39%로 남성 당선을 희망하는 이들보다 무려 10% 이상 앞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바램을 재빨리 읽어낸 영국의 노동당과 사회당은 일부 남성 정치인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비율로 여성할당제를 도입, 총선에서의 승리를 확정짓게 된 것이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내각구성에 적극 반영하여 여성들이 대거 내각에 진출하게 됐다. 더구나 과거처럼 ‘들러리’직책에 한정짓지 않고, 내각서열2, 3위를 다투는 요직들에 여성들을 전진 배치한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 바야흐로 다음 세기를 향한 여성정치의 초석이 마련된 이번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과 내각구성은 세계 여성들의 아낌없는 환호와 격려를 불러일으킨 데 그치지 않고, 다른 국가들의 총선에도 여성할당제의 거센 바람몰이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까지 하다.

영국에선 여성의원수가 2배로 뛰었고, 프랑스에선 여성의원 비율 11%로 58년 제2공화국 출범 이래 처음으로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여성후보의 수도 전체 입후보자의 23.1%에 해당하는 1천4백48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5, 6월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 이를 두고 각국 언론들은 ‘남성위주사회에 여권존중전략 주효’, ‘총선은 여성의 승리’등의 헤드라인을 뽑아내는데 주저치 않았다.

1백20명 여성의 의회진출로 당구장을 탁아시설로 개조하고 여성전용 화장실과 휴게실을 늘려 의원회관 자체의 모습마저 당장 변화하고 있는 영국에선 노동당이 공천한 여성후보자 1백58명중 1백2명이 의회진출에 성공했다. 이어서 블레어 총리는 선거전 섀도우 캐비닛에서 공약한대로 총 22개의 각료직중 5개를 여성들에게 내주었다. 앤테일러 하원의장(50), 마거릿 베케트 통상산업장관(54), 클레어 쇼트 해외개발장관(51), 해리엇 하먼 사회복지장관(47), 그리고 마조리 모렘 북아일랜드장관 등이 바로 그들.

스코틀랜드 출신의 테일러 하원의장은 87년 의회에 입성하기 전에는 개방대학의 교수와 한 주택공급 기업의 모니터링을 총괄했다. 74년 의회에 첫 입성한 베케트 통상산업장관은 정치를 시작하기 전엔 학자로서 노동당을 위해 산업정책을 연구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후에 76-79년 노동당 정권 아래서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청소년 관련단체와 내무성에서 근무하다가 83년 의회에 진출한 쇼트 해외개발장관은 실업과 평등에 초점을 맞춰 해외개발정책을 펴나갈 계획이다. 런던 출신의 하먼 사회복지장관은 82년 의회에 진출했고, 모렘 북아일랜드 장관은 87년 의회에 입성하기 전엔 대학에서 강연과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30% 여성할당제’의 저력으로 여성의원 42명을 배출한 사회당을 비롯, 총 63명이 의회로 진출한 프랑스에선 전체 26명 각료중 8명, 핵심각료 14명중 5명이 여성이 됐다. 조스팽 총리 자신이 ‘여성의 정부’라 공언할 정도로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47), 엘리자베트 기구 법무장관(51), 카트린 트로트만 문화 통신장관(46), 도미니크 부아네 국토관리 환경장관(38), 마리 조르주 뷔페 청소년 체육장관(48) 등 여성을 요직에 배치했다.

이들 중 가장 주목을 끄는 이는 자크 들로르 전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딸로서 2002년 사회당 서기장과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 되는, 내각 서열 2위의 오브리노 동장관. 프랑스 정치엘리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으로 부총리급의 대우를 받는 그는 앞으로 조스팽 정부의 미래가 달려있는 전후 최고 수준인 12.8%의 실업률 감소를 위해 총대를 메게 됐다. 역시 ENA 출신으로 미테랑정권에서 유럽담당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기구 법무장관은 조스팽 내각의 제3인자. 그는 취임후 정치비리 등의 미묘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관 임명과 업무 수행과정에 있어 정치적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여 검찰의 독립성을 수호할 것이라 다짐한바 있다.

극우 국민전선 집회를 반인종주의 궐기대회로 규명하여 유명해진 트로트만 문화 통신장관은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시장으로 시 행정능력과 추진력, 그리고 유럽의회에서의 활약상으로 이번 내각구성에서 정부 대변인 역할도 겸하는 중책에 임명됐다. 가장 젊은 부아네 국토관리 환경장관은 녹색당 출신(녹색당 당수)의 첫 입각으로 주목받은 인물. 전력의 75% 를 공급하는 원전 반대와 대기오염 규제강화를 주장하는 녹색당의 입장을 정책과 어떻게 조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뷔페 청소년 체육장관은 공산당 출신으론 13년만에 처음으로 입각한 인물. 여성문제 전문가로서 여성영향력의 증대를 상징하기도 하는 그는 교육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로써 드골 전 대통령의 “여성장관이라, 안될거없지. ‘뜨개질 장관’같은게 있다면”이란 냉소적 발언과 함께 유럽에서 여성 정치참여율이 낮기로 그리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프랑스는 그 오명을 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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