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판에 꼭‘여자 남자’순서로 쓰고 일에 있어 여남평등 주장하며 남자애들과
논쟁붙는 신세대 페미니스트의 성역할안정도가 형편없이 낮게 나오기도

대머리가 된 어발이는 다행히 학교에서 얻어 터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신 여학생들한테 10원씩 줄테니까 한 번씩 만져보자는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 힙합 바지에 음주에 대머리에 온갖 사고를 치고 난 뒤 기가 좀 죽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기양양해서 들어왔다.

친구들이 준 생일선물과 20여명이 써준 생일 축하 쪽글이 담긴 카드를 안고서. 그러나 의기양양한 이유는 생일선물 때문이 아닌듯 했다. 가방 속을 뒤지더니 고등학교 입학해서 처음 받은 상장이야 하고 내밀었다. 수능 모의고사 전국몇 %안에 든 학생에게 준 것이라면서. 놀기는 하지만 공부를 하고 논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겠지. 종이장 하나가 인증 자료로서 갖는 효과는 상당했다. 어발이 아빠는 지난 주말 잔소리한 것이 좀 머쓱한 듯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몇명쯤 받았는데?” “70-80명 되나봐요” “응…”갑자기 어발이 아빠의 표정이 시들해졌다. 어느 때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했다가 어느 때는 점수가, 그리고 어느 때는 등수가 중요하다고 하더니…. 어발이도 표정이 시들해졌다. 어느 장단에 춤추나 하는 표정으로.

종이장 인증 자료를 둘러싼 해프닝은 그날로 끝나지 않고 다음날 또 일어났다. 어발이가 인성검사 자료를 가져와서 디밀었다. 안정성, 주도성, 사교성, 성역할안정도 등 9가지 항목의 일반성격특성과 학교 생활적응도, 학교공부만족도 등 5가지 항목의 특수 적응 척도의 인성검사 결과였다. 어발이 왈 자기의 “신중성”점수가 낮게나온 것은 친구들이 믿을수 없다고 했다면서 은근히 검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누구는 문제아야. 인성검사가 이상하게 나왔어”를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전문가의 소견이 담긴 종이장이 주는 효과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때 어발이 아빠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어발이의 “성역할안정도”가 우려할 만큼 낮게 나왔다면서 어발이 녀석 순 폼만 재고 섬세하지 못해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성역할안정도”가 무엇인가 했더니 남성적 특성을 나타내는 수치인 모양인데 어발이는 여성적 남성적특성이 너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성역할안정도가 평균치(50%)이하여서 성역할안정도가 매우 부족한 것이라는 “전문가”의 소견이 붙어 있었다. 어발이의 성역할안정도는 34였다.

그래서 어발이보다 성역할안정도가 더 낮은 아이는 누구인가 물어 보았더니 20인가를 받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바로 내숭을 떨지 않으면서 어발이 삐삐에 메모를 남긴 그 아이였다. 그 아이는 흑판에 “남자 여자”를 쓸일이 있어도 꼭 여자 남자 이렇게 쓰는 아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또한 성별에 기반한 분업이 있는 한 여남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하는 일에 아무런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시때때로 남자애들과 논쟁을 붙는 모양이다. 자기친구 ○○, △△는 그애만 보면 질색이고 그래도 어발이 자기정도가 봐주는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엄마보다 더 하다니까”였다. 막강한 신세대 페미니스트가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아이의 성역할안정도가 형편없이 낮아서 어쩌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너무 높은 “여성성”때문에 상담을 해야하는 곤욕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큰애가 아주 당혹스런 표정으로 인성검사 자료들을 읽고 있었다.

전문가적 인증자료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받아오는 인성검사나 적성검사 결과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이 만만찮다. 바로 이원고를 쓰기 조금전 만난 동료(남자) 교수가 중1 짜리 남자아이와 고1 짜리 여자애를 두고 있는데 작은애의 적성검사가 큰애에 비해 너무 낮게 나와 걱정이라고 상담을 해왔다. 그 적성검사를 보고서 아들에게 “짜장면 집밖에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 아이가 “중국집이라면 또 몰라도 테이블 서너개밖에 없는 짜장면 집이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위트있는 아이가 과연 할 게 없을까? 어발이의 적성검사는 초등학교때는 운동선수밖에 할 게 없는 아이로 나오더니 중학교때는 사무직을,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해서 나온 적성검사에는 이공계 적성이었다. 새삼스럽게 전문가에 대해, 전문적이라는 이름의 지식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환상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글쎄…산다는게…”이런 소리 비슷하게 하고 있는데 어발이 녀석이 “뭐, 엄마가 다 인생을?”하면서 끼어들었다. “그래, 뭐 엄마는 인생을 이야기하면 안되냐?” 엄마는 뭐 “밥먹었냐?” “공부해라”나 이야기하고 아들은 엄마한테 “도시락 됐어요?” “옷 단추 떨어졌어요. 달아주세요”나 이야기 하니까 엄마는 인생을 이야기 할줄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전문가에 대한 환상을 생각하다가 어발이가 던진 “엄마가 다 인생을?”이라는 질문을 받고서 엄마에 대해서 우리는 전문가와는 정반대 의미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살림으로 늙으시고 살림밖에 모를뿐 아니라 살림에 너무나 열심이다. 나는 어머니가 살림을 무척 즐기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전에야 우리 어머니는 놀랍게도 살림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가를 이야기 하셨다. 오죽하면 어느 여자가 죽으면서 “살림 따라오나 보라”고 했겠느냐고. 죽어서 가는 길에도 혹 살림이 쫓아 따라오나를 걱정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들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환상. 살림밖에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오해. 우리 할머니는 여든에 세상을 뜨셨는데 “산 것도 같고 안산 것도 같다”고 하시면서 눈을 감으셨다. 난 처음에는 우리 할머니 그렇게 생각 안했는데 욕심도 많으셔”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할머니 제법이야. 상당한 경지에 이르셨던 모양”이라고 감동하고 있다.

그런데 어발이의 인성검사와 적성검사를 보면서는 늘어날 쓰레기 용량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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