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국정경험과 사명감을 무기로 국가위기 정면 돌파한다”

경선에 가장 뒤늦게 합류한 불리한 처지와 더불어 대선자금 출처를 밝히려면 밝힐 수 있지만 국가 앞날을 위해 이에 대한 논의로 국력소모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다소 유보적인 최근 발언으로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신한국당 최병렬 의원. 그는 KBS·MBC·SBS 방송 3사의 대국민 TV토론에서 기자 출신다운 노련미와 함께 특유의 뚝심과 소신을 보여 상당한 약진을 했다.

본지 대선 특별취재팀이 최병렬 의원을 자택으로 방문한 날도 오전부터 부천에서 열리는 ‘대의원 선출을 위한 지구당 정기대회’로 그의 하루는 숨쉴 틈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여유있게 맞은 최의원은 또박또박 명확한 어조로 진지하게 소신을 밝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 의원 곁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은 부인 백영자 여사 역시 시종일관 남편의 소신에 동조하며 힘이 실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였다.

 

- 경선에 뒤늦게 합류하신 것이 최대 논쟁거리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너무 늦게 시작했어도 결심은 의외로 빨리 한 편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국가가 훨씬 더 심각한 위기싱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상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만큼 국제사회에선 경쟁력을 상실했고 외채는 어마어마하게 쌓였죠, 한보사태도 터졌죠. 여기에다 북한 붕괴까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국가 비상사태죠. 이런 총체적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않고는 21세기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음 대통령이 해야 될 일입니다.

따라서 저는 국가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국가 쇄신을 위한 10가지 정책도 발표했습니다. 다음 세기는 문화와 정보의 세기이고 여기에 걸맞는 리더쉽도 필요하지만, 현 단계에선 위기수습이 우선입니다.

또 리엔지니어링은 경험없는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아마추어나 명망가, 프로정치인이기 보다는 국가조직에서 실제적 경험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깨끗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쨌든 위기탈출이 최대 과제입니다.”

- 다가오는 7월 21일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과반수를 확보 못하면 연대를 해야만 되는데, 의원님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계신지요?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가면 ‘승리를 대치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심정으로 이번 경선을 시작했습니다. 안된다면 이리저리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끝까지 가보고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장점을 말씀해주시지요.

“무엇보다 위기극복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국정경험을 쌓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아시다시피 공보처 장관 시절엔 방송 관계법을 뜯어고쳐 오늘날의 케이블 TV와 인공위성 방송을 가능케 했습니다. 또 노동부 장관 시절엔 ‘총액임금제’로 왜곡된 임금구조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했고, 서울시장 재직시엔 성수대교 붕괴의 참담함속에서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예만 보아도 위기상황 극복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자부하는 바입니다.”

- 의원님은 ‘문화의 세기’에 맞는 커리어를 지니고 계신 것 같은데, 이에 적합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신지요?

“21세기엔 정보통신, 멀티미디어를 총동원한, 쉽게 말씀드리면 스필버그식 돈벌이가 바람직합니다. 산업도 문화와 연결돼야 하며 문화가 곧바로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마인드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적 리더쉽이 상당히 요구되는 거죠.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적 마인드가 강해 문화의 자연발생적 붐이 일어나기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점이 바로 우리가 21세기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문화산업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소기업은 중국에, 중화학은 일본에 치여 자생력을 잃어 힘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중소기업 살리고, 중화학 살려 국가경제 살리고 국제 경쟁에 나선다는 것은 구닥다리 생각이예요.

이럴 때 문화를 가지고서 경쟁하려고만 하면 곧바로 경쟁할 수 있습니다.”

- 우리사회가 소프트한 분야에선 미국, 일본처럼 대안을 마련 안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퇴 등의 사태에 대해 대처방안이 있으신지요?

“우리나라는 87년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임금이 치솟고 급격히 생산률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서서히 질서를 잡아가면서 국제경쟁력을 키워가야 되지 않았나 하고요.

제가 노동부 장관을 할 때 닥쳐올 경제위기에 대해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경제부처 사람들조차 우리 경제가 이미 잠재적으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에 별 문제 없다고 흥흥거렸습니다. 전 그랬죠. 기존산업으론 이젠 불가능하니 ‘새로운 전선’을 열어야 할거라고. 나름대로 노력은 해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 너무 빨리 말씀하셨군요(웃음).

“(백영자 여사) 당시 이런 소신때문에 여러번 다투었어요. 부부모임에 가면 항상 이 얘기를 하곤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뜨악하게 만들곤 하셨죠. 그래서 탁자 밑으로 꼬집기도 했답니다.”

- 5.18 민주항쟁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셨는데, 광주항쟁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당시는 중간간부라 실상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광주 외곽조차 진입못하도록 엄중히 검열하지 않았습니까?

5.18에 관해선 법정기념일까지 제정되는 등 사실규명, 명예회복 문제에 대해 현재로선 할 조치는 다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 많은 언론인들이 정부쪽에 영입되어 왔듯이 5공때 전국구로 영입되셨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85년 1월 전국구에 영입됐습니다.

84년 말 후배 기자로부터 제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어서 리스트에 오르내린다는 소문을 듣고 당시 민정당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명단에서 빼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허문도 당시 정무수석이 아침이나 먹자고 연락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름없는 전국구보다 편집국장 자리는 후배에게 물려주고 잘 나가는 <조선일보> 상무하고 싶었던 것이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도피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여러 사람들이 ‘팔자라 생각하라’고 설득하더군요. 끝끝내 거부하면 <조선일보> 내 중역자리까지 위태로울 거라는 반협박성 충고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1시에 사인을 했습니다.”

- 공약하신 10대 혁신과제 중에 여성을 가사와 육아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요, 의원님은 개인적으로 어떠신지요?

“가정에서야 폭군이죠(웃음).”

- 그대로 나갑니다(웃음).

“농담도 못합니까? <조선일보>에서 파리특파원을 내보내려 할 때 윤호미 현부국장이 불어를 전공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적극 추천,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파리특파원이라는 주요 포스트에 내보냈습니다.

또 노동부 장관 시절엔 회의 석상 끄트머리에 앉은 젊은여성이 남자 찜쪄먹게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1조원을 주무르는 노동부 알짜배기 자리인 보훈국장에 임명했어요. 이 사람이 바로 전재희 광명시장이죠. 전재희씨가 얼마나 딱 부러지게 일을 잘했는지, 입금은행을 말썽 안나게 고르게 표로 작성해 놓고는 ‘장관님, 특별히 배려해 줄 데 있습니까?’라고 묻는 게 아니겠습니까? 할 말이 없습디다.

현재 젊은 여자 사무관중엔 똑똑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인재들을 발탁해서 기회를 주기만 한다면 기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여성이 정치 입문하면 깨끗한 정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엔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여성이 같은 여성을 안찍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전에 정희경 의원으로 하여금 강남구에 출마하도록 제가 적극 모션을 건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임진출 의원이나 추미애 의원은 예외라 할 수 있겠죠. 또 한가지는 여권운동은 폭을 넓혀 공격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제가 여권운동 하신다는 분들에게 늘상 하는 말인데요, 폭을 좁혀가다 보면 반격이 거세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공격은 분명해야 살아남겠죠.

또 가사·육아 해방문제는 전체 여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여성이 자아실현을 못하는 주요 이유가 바로 가사와 육아때문이라고 봅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재택근무, 시간제근무 등 변형근무제가 들어오게 돼있죠. 근무형태가 달라지게 돼있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한 가구에 두 사람이 벌어야 살 수 있게 됩니다.”

- 탁아소 시설도 확충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대폭 늘릴 겁니다. 정부예산을 많이 들이기 보다는 골목마다 없는 곳이 없는 교회, 성당, 사찰 등을 탁아시설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교회의 경우, 수요일과 일요일 등 이틀 정도만 빼면 낮에 활용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 보육사만 파견해주면 일본 동경 못지않은 탁아시설로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또 주부들 중엔 중고생 학교급식만 시켜준다면 누구라도 찍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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