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아침 우유.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아침마다 우유를 배달해주는 아저씨가 있다.

30대 중반쯤. 작은 키에 까만얼굴. 언제봐도 방금 선탠 완료. 건강미가넘친다.

그가 건네주는 우유 만큼이나 싱싱한 미소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어느날 하루는 그 웃음이 유난히 태양처럼 눈부셨다. 내게로 다가오더니 목소리 볼륨을 높인다.

“저 축하 좀 해주십시쇼!”

“무슨일 있어요?”

“드디어 딸을 낳았습니다!”

그동안 아들만 둘이었던 그들 부부.

그들의 평생 소원은 통일, 이 아니라 딸 좀 낳아봤으면!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다가 올 시대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필요하다는 그의 안목에 나는 우선 기분이 상쾌했다.

딸 낳은 기념, 평생 소원을 이룬 기념으로 그는 전직원에게 야쿠르트 하나씩을 무료로 서비스했다.

햐? 그 딸 아빠 한번 대단히 멋지네?

매일아침 마주치며 눈으로 인사하거나 농담 한마디 하건, 하면서 나는 이제 그와 친구가 된 셈이다.

하루는 내가 우유를 달라고 했다.

“얼마죠?”

“3백원입니다.”

내가 알기론 분명 3백30원 일텐데 그는 3백원만 달라고 한다.

나는 대뜸 그에게 따져 물었다.

“왜 삥땅 하시는거죠?”

그러면서 부득부득 10원짜리 동전 3개를 챙겨 주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삥땅이라면 돈을 몰래, 슬쩍 하는 것, 아무튼 몰래 뒷주머니에 감추는 것을 의미한다.

“더 받는게 아니고 덜 받았는데? 이럴 경우도 삥땅에 속하나요?”

발랄한 신입사원 한사람이 묻는다.

“그렇고 말고. 정당한 요금을 받지않고 부당하게 깎아 주었잖아? 그것도 광의의 의미로 보면 삥땅 아니겠어?”

나의 유권해석에 다시 한번 까르르.

어쨌거나 나는 우유아저씨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단 돈 10원 하나라도 그에게 손해를 줄 수 없었다.

남들이 다 잠든 새벽, 아니 그가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이 밝기도 한참 전. 깜깜절벽 3시쯤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라면 얼마나 단잠이 그리울 시간인가. 그 강렬한 유혹을 물리치고 텅 빈 거리를 질주하며 한집 한집 건강을 배달해 주는 우유아저씨.

아들보단 딸이 더 필요하다는 그에게서 미래를 짚어보는 혜안이 느껴진다. 그래선지 그가 건네주는 우유를 마시며 나는 행복하다.

우유속에 담겨져 오는 인간관계의 신뢰까지 마실수 있다는건 얼마나 큰기쁨인가.

‘신뢰’라는 무거운 단어가 내위장을 통해 혈관으로 퍼져가면서 행복의 빗살무늬로 빠르게 변화되기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위엔 이렇게 좋은 의미의 삥땅보다는 나쁜 의미의 삥땅이 더 많이 판치고 있다.

남의 돈을 가로채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공을 내가 가로채는 것 또한 확실한 삥땅.

직장에서도 그런 일은 흔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자주 그렇다. 힘 없고 빽없는 부하직원들이 고생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작품을 마치 자기 혼자 이루어낸 완성품인양 과시하는 못된 상사 삥땅형.

사랑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폭포수처럼 쏟아붓는 양 거짓말을 일삼는 플레이보이 삥땅형.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바가지 씌우면서 거저 주는양 온갖 감언이설로 지갑을 털어내는 장사꾼 삥땅형….

우리는 주위에 얼마나 다양한 삥땅이 존재하는지 매일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삥땅은 거품보다 한단계 나쁘다.

왜냐하면 의도적인 ‘음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우리 경제. 우리들 생활속에서 거품뿐 아니라 삥땅도 함께 걷어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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