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내렸을 때 한동안 방향감각을 잃고 허둥거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터인데, 이럴때 반가운 길잡이는 찾아가는 곳의 이름이 쓰여진 방향표지판. 그런데 요즘은 지하철역 주변의 상권이 발달하고 새로운 건물이 대거 들어섬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들어있던 학교, 아파트 등이 빠지고 백화점, 은행, 병원들이 새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00 중학교 출구로 나와라”라고만 가르쳐 주었다가는 헤매기가 십상.

최근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관장하는 서울지하철공사에서는 지하철역 구내의 방향 표지판을 유료화하겠다고 밝히고 역 주변 업체들을 상대로 공개모집에 들어갔는데… 공사측에 따르면 신규 표지신청이 빗발치기 때문에 기득권을 인정하는데 한도에 다다랐다는 설명. 높은 광고 효과를 누리는 만큼 수익자 부담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 오는 7월부터 재정비될 표지판 게재비용은 역과 표지판 위치에 따라 연간 게재료가 70만원부터 89만원까지로 차등화.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의 10여군데 표지판에 이미 이름이 올라있다는 한 대기업의 경우, ‘이 역에만 1년에 7백만원이상 게재료를 내야한다’며 적지않은 비용 부담에 강한 불만을 토로. 그러나 공사측은 오는 6월말까지 계약을 하지 않는 기존표기자들은 이름을 빼겠다고 발표, 대상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응하지 않을 수 없을듯.

유료화 대상은 금융기관, 백화점, 언론기관, 기업체, 병원 등으로 관공서나 학교, 아파트 등은 앞으로도 계속 무료 게재 방침.

‘형평성의 원칙’도 좋고, 지하철 만성적자를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보겠다는 아이디어도 가상하지만, 지하철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무료 게재는 몽땅 빠져 버리고, 돈내는 업체로만 가득찬 이상한 표지판으로 둔갑할까 걱정된다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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