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봄달력은 왠지 불안하다. 봄이면 희망과 설레임에 들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달력은3·15, 4·19, 5·16, 5·18, 6월항쟁 등 정변과 민주화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희망과 좌절이 공존돼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날치기 노동법, 한보사태, 대선자금 시비 등 5개월간의 긴 터널을 지나왔다. 대선과열로 이젠 좀 방향이 틀어지는가 했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한보와 대선자금 문제를 그대로 놓아줄리가 없다. 4월부터 갑옷과 화염병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전경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됐다.

꽃같은 우리의 청년들이 희생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민간인 치사사건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지도부가 직접 개입, 지시했다면 조직이 직접 책임을 면할 수가 없게 됐다. 검찰은 이에 따라 한총련간부 검거는 물론 한총련을 완전 와해시키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검공안부는 이를 계기로 지난 10일 안기부 경찰교육부 등 관계기관들과 함께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 실무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하고 한총련지도부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한총련의 반응은 분명치 않다. 자신들의 출범식을 경찰이 완전봉쇄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라는 근본원인을 지적했다. 또한 경찰이 소위 ‘학원프락치’를 대거 투입함으로써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양측의 대응방식을 보면서 어딘지 유신이나 5,6공때 학원사태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생들의 집단시위 때 전보다 화염병이 늘었고 최루가스가 조금 독해진 것 빼곤 공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기선제압이니 사전봉쇄니 하는 공방도 그러하다. 대학생들이 지적하는 정치권 부패와 비리척결의 내용도 예전에 많이 듣던 것이다. 대통령이 그렇고 정부, 여당의 대응도 비슷하다.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도 예전의 ‘관계기관합동회의’의 닮은 꼴이다. 지도부 조기검거와 자금원차단은 빼다박은 수법이다.

한국사회 문제해결의 뻔한 수준이다. 정부, 여당의 잘못-언론과 여론의 비판-적당한 책임추궁과 타협-대학생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요구-경찰력, 완전봉쇄 등 강경대처-과격시위로 인한 사고발생-언론의 과장보도-정부의 강경책 발표. 근본문제가 해결 안 된 채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총련 지도부 몇명이 검거될 것이다. 정부는 오는 8·15 범민족대회까지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골라가면서 ‘숨바꼭질’도심시위를 계속할 것이다. 언론은 벌써 ‘한총련, 이대로 좋은가’등의 시리즈 기획물 등을 내보냈다. 여름이 지나면 대선열기로 한총련은 잊혀질 것이다.

신문 사설의 지적대로 지금의 공방이 소모전인가. 대학생들의 주장이 틀렸는가. 그들은 올해 전반기 우리사회를 뒤집어놓았던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날치기등의 주동자들이 또다시 여당의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서고 있다. 한보로부터 돈을 받았던 여권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보사태는 김현철씨 구속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무엇 때문에 언론이 그토록 떠들어댔는지 모두들 잊어버린것 같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과격시위만 공격하고 있다. 동문서답이다. 넌센스 퀴즈 같다.

비슷한 과거에서 보아온 한가지는 분명하다.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과거정권이 오히려 부도덕했다는 사실이다. 그 많았던 과거의 ‘좌익사범’들이 지금 이 나라 산업역군의 주역이다. 문제는 이들까지도 언론의 분위기에 압도돼 후배들을 긴가민가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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