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달걀장사로 시작, 종업원 50명 월매출 1억5천만원. 물류비용 줄여 싸게 공급할 터

 

“김치공장은 넥타이 맨 사람이 많으면 문 닫는다.”라고 강조하는 유 사장. 영업은 아직까지 그의 몫이며 급할 때는 트럭을 타고 직접 배달을 다닐 때도 있다.
“김치공장은 넥타이 맨 사람이 많으면 문 닫는다.”라고 강조하는 유 사장. 영업은 아직까지 그의 몫이며 급할 때는 트럭을 타고 직접 배달을 다닐 때도 있다.
풍미식품의 유정임 사장(43)이 계란장사를 할 때의 별명은 ‘청바지 입은 인사 잘하는 아줌마’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아파트에 계란판을 들고 배달할 때 간편하도록 입은 청바지에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의 모습은 하루도 거름없이 동네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열심히 인사를 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저렇게 부지런하니 저이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지금, 유정임 사장은 물김치, 나박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갓김치, 오이소박이, 석박지등 10가지의 김치를 판매하여 한달 매출 1억5천만원을 올리는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의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김치가공 전문업체인 풍미식품은 수원 세류시장 내에 있다. 공장직원은 50명. 배송직원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40~60대 여성들이다. 공장장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유사장과 함께 풍미식품을 지켜온 최월윤(65) 할머니. “나이먹은 사람의 손맛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신하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이들의 손맛을 거친 김치는 수원, 오산, 용인, 신갈에 위치한 성균관대 학생회관, 경희대, 아주대 기숙사, 기흥휴게소, 경찰대 교직원 식당, 병원 등 3백6십여 곳으로 배달된다.

“한 번 뚫은 거래처는 놓치지 않는다.”는 유사장은 ‘맛’과 ‘신선도’유지에 가장 힘을 쓴다.

“고객의 입맛에 따라 배달하는 김치도 달라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신김치를 좋아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신김치를 싫어하기 때문에 연령대와 취향에 따라 김치가 달라야 해요.”

“맛만 있으면 소문은 저절로 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유사장은 재료만큼은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고춧가루와 젓국이 풍미식품의 김치맛을 좌우한다고 전하는 그는 태양초 고춧가루, 찹쌀풀, 산오징어를 많이 넣어 김치를 담그며 특히 김장김치는 생새우를 많이 넣어 김치의 시원한 맛을 더한다고 한다.

또 하나 풍미식품 김치 맛의 비결은 무공해 배추. 초창기에는 가락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았지만 지금은 품질좋은 종자를 직접 사다가 계약재배를 한다.

이 때문에 ‘배추값이 올라도 김치값은 안 올려도 되는 ’장점과 함께 ‘항상 맛있는 배추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할수 있다’는 것을 유정임 사장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그의 맛자랑은 끝이 없다. 경찰대 졸업식에 참석한 대통령 내외의 밥상에 풍미식품의 김치가 올라간 것을 비롯, 맛을 보고 결정하라며 김치를 직접 싸들고 다니던 초창기에 김치 맛있다며 미련없이 단골을 바꿔주던 한 유리회사 연구소 직원들에게 그는 아직까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취급되는 배추는 약 8천 포기.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문전화 받기도 빠듯하지만 유정임씨는 사장이라고 가만히 책상만 지키지는 않는다. “김치공장은 넥타이 맨사람이 많으면 문 닫는다.”라고 강조하는 유사장에게 영업은 아직까지 그의 몫이며 급할때는 트럭을 타고 직접 배달을 다닐 때도 있다.

사업 시작한 지 2~3년이 지났을 때 배추값이 폭등한 일이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원도로 가서 산지에서 직접 배추를 실어오는 일을 그의 시누이와 함께 했다. 운전면허 딴 지 3일밖에 안 된 초보운전자였던 그는 승용차도 아니고 트럭을 몰고 강원도에서 올라오면서 언덕길을 못 올라가 다시 밀려내려가는 아슬아슬한 일을 겪기도 했다.

냉동차가 없었던 초창기 2년 동안은 아이스박스에 김치를 넣고 배달을 다니기도 했다. 가락시장으로 밤 10시에 배추를 사러가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잠깐 눈을 붙였다가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고 집을 나와 공장에서 배추를 절여놓고 낮에는 영업하러 다니던 형편인지라 유정임씨는 9년 동안 휴가 한번을 가지 못했다.

그때까지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부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언 반구 말이 없었고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실 얼마나 갈지 모르는 일 때문에 남편이 갖고 있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안정된’직장을 그만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풍미식품의 한식구가 되었다.

유정임 사장은 그동안 야구르트, 우유 배달, 달걀장사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밥장사를 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유사장을 고아원에 보내려 할 정도로 어려운 집에서 성장한 그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헤아릴 줄 안다.

공장 한켠에 좁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 머리를 숙이고 들어서야 하는 간이 사무실에는 저금통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동전과 1천원, 5천원짜리 지폐를 따로따로 푼푼이 모아 일정한 액수가 되면 그는 수원시내에 있는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이를 알고 표창을 내리려 하자 극구 마다하기도 했다.

힘든 집안 사정으로 인해 학교공부도 많이 못했다. 현재 이화여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그는 느지막한 공부가 머리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재미를 붙이고 있다.

대학2학년인 딸과 고1, 고3인 아들을 둔 유정임 사장은 과외교사를 붙이는 대신 과외비를 아이들 통장에 넣어준다.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 오는 것보다 육상대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아들에게 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김치를 담고 있다.”는 유정임 사장은 6백5십평의 부지를 마련해 내년에 공장증설을 앞두고 있다. 물류비용을 최소화해 소비자들에게 좀더 싼 가격으로 김치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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