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시대에‘부드러운 사회·힘 있는 나라’꿈꾼다

도심의 아침은 분주하다. 밀리는 차량들, 바쁜 걸음 걸음. 경선을 한달여 앞둔 대선 주자들의 아침은 더더욱이나 바쁜듯 하다.

회색빛 하늘이 금방 비라도 뿌릴듯 낮게 드리워진 아침 시간, 취재진은 세종로에 위치한 이홍구 고문의 ‘미래사회연구원’을 찾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무실은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선주자로서, 또 신한국당 고문으로서 바쁜 행보를 하는 이 고문은 이날도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영국 신사’라는 별명답게 특유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이고문 집무실에는 별다른 장식없는 흰 벽에 유영국화백의 작품 한 점이 걸려있었다.

- 그림을 좋아하시나요?

“그렇죠. 어느 특정한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림이 좋아 미술 전시회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우리 큰 애가 호암미술관 큐레이터로 있어서 관심이 많지요. 음악회를 더 자주 가는 편이긴 합니다만. 작은 애가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거든요. 지난 달에도 4번인가 갔지요.”

- 부부 동반으로 가시나요?

“그럼요. 웬만하면 꼭 같이 가지요.”

- 스스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성이 인구의 반 이상인데 일반론으로 이야기하긴 어렵겠지요. 하지만 내가 만나는 여성들,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 강의할 때 만나는 여학생들, 여성단체 모임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대체로 괜찮다고 생각해요.”(웃음)

- 이고문의 어떤 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좀 부드러운 편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 이고문께서는 그동안 여러 자리에서 부드러움-유연성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지요. 정치, 경제등 정책적인측면에서도 ‘경직성에서 유연성으로 ’를 강조하시는데, 그 ‘부드러움’의 정의를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가지 측면을 들 수 있어요. 하나는 ‘제도’자체가 교조적이고 옛 것을 버리지 못해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그렇게 되면 변화, 개혁, 개선의 가능성은 점점 더 적어지지요. 두번째는 ‘스타일’의 문제라고 봅니다. 과거의 정치는 소리를 크게 내고 강압적으로 나가야 좋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뀐것 같아요. 말하자면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되었으니 가급적이면 소리가 덜 나고 부드럽게 일을 처리해야 능률적이고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도’와 ‘스타일’모두에서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경직된 관행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 급선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거든요. 선진국들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할 일을 다하고 있잖아요.”

- ‘부드러움’이 이고문의 가치관이신 것 같은데, 여성의 사회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부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나라는 여성교육 수준이나 여성에 대한 투자가 다른나라에 비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지요. 내가 보기에 한국 경제발전 최고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이런 여성인데, 앞으로 5년 10년 사이에 이것을 어떻게 끌어내어 적절한 곳에 투입하여 폭발적인 힘으로 활용하느냐가 큰 과제라고 봅니다. 여성인력 활용과 유연성의 문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지요. 이것이 바로 ‘선진화’로 가는 길이에요.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보십시오. OECD 국가들은 모두 그렇거든요. 결단이 필요합니다.”

- 여론조사 결과 당내외의 지지율이 모두 낮은데요.

“다소 실망스럽긴 하지요(웃음). 그러나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아요. 실지로 지방을 다녀보면 여론조사 결과가 반드시 맞는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무시할수도 없긴 하지만요.”

- 굳이 대선에 출마하시려는 이유와 차기 대통령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화합이지요. 먼저 계보에 치우치지 않는 당 내의 화합과 우리 사회의 큰 병폐인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화합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강하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성격적으로도 그렇고 지역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선진의 문제인데 우리나라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선진국의 문턱은 여전히 높아요. 과학 기술, 교육제도, 여성문제등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지금 이 상태에서 선진화로 가기 위해선 굉장한 개혁과 노력이 필요 합니다. 경제구조 개편하고 사회 문화적인 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그간의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세번째는 통일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통일의 때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대비하고 국제사회와 연계시켜 통일국가를 이루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따라서 통일 외교분야는 향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되고 있지요. 이 분야는 잘 아시다시피 내 전공분야 아닙니까. 경험상으로도 그렇고. 그러니 내가 제일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이쯤해 놓고 당원들의 의사 결정에 맡겨야죠.”(웃음)

- 권력 분산론과 책임 총리제를 주장하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치학 이론상으로도 그렇고, 또 실지로 총리를 해 본 경험상으로도 권력이 한군데 집중되어 있으면 정부가 능력도 떨어지고 책임도 떨어집니다. 책임을 다 대통령이 지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은 책임도 권한도 없기 때문이지요. 한보 사태의 경우도 결국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그건 제도상의 잘못입니다. 책임이 있어야 하는 곳에 책임이 없고, 권한이 있어야 하는 곳에 권한이 없다보니 생긴 일이지요. 책임 총리제도 국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는 총리가 맡고, 통일 문제, 과학 기술의 압축 성장, 교육제도 등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결단이 필요한 일은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 해야 한다는 겁니다.”

- 산업 기술부 신설을 제안하셨던데 그것은 경제 회생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 기술을 담당하는 과기처와 산업 행정을 담당하는 통상 산업부와는 전혀 연계가 안되고 있어요. 그 연계가 잘 되어야 신제품을 만들어내고 신기술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용이 해지는 것이지요.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고요. 선진국 대열에 들려면 기술경쟁을 해야지 옛날처럼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산업과 기술을 연계하는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반 이회창 연대, 정발협 등 당내 경선 구도가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어떠신가요?

“역시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당내 경쟁을 하는 전당대회는 민주적이고 좋은 것입니다. 조금 더 있으면 가닥이 잡혀가겠지요. 지난번에 내가 ‘경선 4원칙’이란것을 제시했는데 동료들도 다 수긍했어요. 첫째는 절대 다른 후보를 비방하지 말자는것, 둘째는 가급적 정책을 이야기 하자는 것, 셋째는 돈을 쓰지 않는 경선을 하자는 것, 넷째는 결과에 승복하자는 겁니다.”

- 이고문의 이미지는 아직도 여전히 학자풍이고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도 상당히 원칙적인 것들인데, 그러한 것들이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내 역할을 한국 정치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좀 어렵더라도 우리가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기준을 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이기느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지요.”

- 통일문제 전문가이신데 북한 돕기 운동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구호와 경제 원조는 별개 문제 아닙니까. 구호는 적극적으로 해야지요. 북한 주민과 아동의 기아 문제는 자칫하면 우리 민족에게 오래 가는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 원조는 달라요. 우선 북한 정치체제로서의 장래가 대단히 불투명하고 위기국면에 처해 있는 상태기때문에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합니다. 남북관계는 국제 사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만큼 경제 협력이나 원조는 그에 따라야지요.”

- 황장엽 리스트에 관해서 ‘기본적으로 북한체제와 관계 지어야지 우리 정치와 연관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개에 반대하셨는데요.

“첫째, 나는 리스트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근거무근 아닙니까. 누가 본 사람도 없구요. 그러나 황장엽씨의 중요성은 크다고 봅니다. 김정일 체제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북한 체제 이념의 제1인자가 자신이 만든 체제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은 북한 장래로 볼 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일차적으로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북한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것이 먼저라는 얘깁니다.”

- 이번에 신한국당에서 당헌 당규 개정하면서 여성 비율이 크게 늘었거든요.

“그건 아주 잘한 일이에요. 우리나라도 여성 국회의원이 적어도 50-60명은 되어야 영향력이 있지 십여명 가지고는 한참 부족하지요. 영국의 경우 여성 의원이 1백30명이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