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교육문제는 어느 개인의 각오로 해결한 수준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급선무의 과제인 것이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사교육비 지출은 94년보다 크게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5월 1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 김민하)와 서울대 교육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총과외비 규모는국민총생산의 2.2%, 전체 교육예산의 51%에 해당하는 9조 4천3백억원이며 여기에 취학전 아동과 재수생의과외비를 포함할 경우는 우리나라 전체과외비 규모가 14--1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 액수는 과외비 증가율 61.4%를 적용해 볼 때 22조에서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또 소비자보호원과 한국갤럽이 전국5천여가구와 학원수강생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사교육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11조9천억원에 달한다는 발표이다. 이는 3년전인 94년의 사교육비 추정치 5조 8천억원의 2배가 넘는 규모이다. 이 놀라운 통계에는 학령전 교육비가 제외되어 있다. 학원교습을 받는 학생들 중고등학교 3년생들은 25.7%가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학부모 가운데는 77.5%가 사교육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부업을 하거나 은행대출로 사교육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15.5%나 됐다는 조사이다.

이 두 통계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풀어야 할 긴급한 과제가 교육문제임을 확인시킨다.

공교육이 현실적 욕구를 뒤따르지 못하는 동안 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을 감수해가면서 대학입시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교육열은 날로 높아져 이제는 보통 학부모들의 기대가 대학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소보원통계는 학부모의 97.7%가 대학이상의 교육을 시키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힌다. 만약 학력에 따른 소득격차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았을 때는 76.6%의 학부모들만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겠다고 답하고 있다. 이는 우리국민들이 대학입학이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계층적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적 추정치가 24조원까지 나오고 있는 사교육비는 전국민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는 국가발전의 걸림돌임이 분명하다. 과외비 부담을 거론할 때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탓하는 말들이 나오지만 이는 안이한 책임전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누구보다도 ‘빠삭하게’알고 있는 엄마들인데 치맛바람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엄마들에게 국가경제를 위해서 과외비를 줄이라는 호소가 먹혀들 리가 없다.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만들어 놓는다면 누가 허리띠 졸라매면서 과외비를 쓰겠는가?

여성계에서는 정치지도자 초청 토론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문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자 한다. 교육문제로 신음하는 1차적인 피해자가 여성들이기 때문에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정치문제에서는 교육문제가 빠질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온통 대권경쟁으로 들떠 있다. 매일매일 신문을 읽기가 민망할 지경으로 ‘용’들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고위 정치지도자들의 가슴 속에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실한 열정이 들어 있을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대선주자라 해도 ‘내 코가 석자’식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절박한 과제가 있음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제발 우리의 정치가 국민생활의 고통을 덜어주는 본래의 임무를 다하는 차분함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선진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작하게 될 21세기. 그러나 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우리나라처럼 정신질병에 가까우리만치 입시를 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온국민이 전전긍긍하는 선진국은 없다. 정치도 경제도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난국은 국가 미래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의 교육문제는 어느 개인의 각오로 해결한 수준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급선무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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