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당국간의 접촉보다 비정치적 접촉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시기다.
굶주림은 우리의 소원인‘통일’보다 시급한 문제다.

지난 5월 26일 베이징에서는 오랜만에 남북한간에 숨통을 트는 쾌거가 있었다. 한국 적십자사가 북한에 7월 말까지 5만톤의 밀가루와 옥수수를 보내준다는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다. 2년 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 합의해 북송이 이루어졌다가 소위 ‘인공기 게양’사건으로 끊어진뒤 2년만의 일이다.

이는 단순히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볼 사안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그간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일부러 ‘모르는 척’해왔던 태도에 비해선 큰 진전이다. 남북당국자간이 아니라 적십자간의 합의라 조금 격이 떨어지는것으로 이해될지 모른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은 당국간의 접촉보다 비정치적 접촉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시기다. 남한당국은 지난해 북한의 잠수함 침투 이후 북한불신이 어느때보다 높다. 북한당국도 4자회담이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의도라고 불신하고 있다. 이러한 양당국간의 불신의 벽으로 인해 북한동포들은 굶주림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 굶주림은 우리의 소원인 ‘통일’보다 시급한 문제다.

북한은 우리에게 애물단지인가. 북한정권과 북한동포라는 말에는 감정이 교차한다.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가장 강력한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 왕조시대가 아닌데도 정권을 세습하는 나라, 통일지상주의를 위해 6.25라는 동족살상을 서슴치 않았던 정권.

재미동포 재일동포와 연변동포나 북한동포는 전혀 상반된 느낌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도발에 첫째 원인이있고 이를 역대 남한정권이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했기 때문에 악성이미지가 더 강화됐다. 72년을 기점으로 남한의 1인당 GNP가 북한을 따라 잡았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런데도 60년대 국민학교 도덕교과서에는 북한동포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고 묘사돼 있었다. ‘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선전이 20여년이 지난 90년대초부터 북한 땅의 실제모습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정부는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데 주저하고 있다. 김영삼정부의 대북한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어국민들도 북한돕기에 헷갈리고 있다. 김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족보다 가까운 동맹국은 없다”는 전향적인 대북관을 보였다. 그러나 93년중반부터 북한의 ‘핵개발의혹’이 터져나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북쪽의 ‘서울 불바다설’이 터져나와 94년 전반까지 한반도 전쟁시나리오가 나돌았다. 급전되어 94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합의까지 진행됐다. 곧바로 김일성 북한주석이 죽고나서 불발로 끝났다. 이때부터 남북관계는 미국과 북한의 주도로 진행돼 94년 10월에 북핵처리에 관한 제네바합의가 이뤄졌다.

이때부터 북한 식량난 해결을 위한 실무접촉이 활발해졌다. “수입을 해서라도 쌀을 대주겠다”던 정부가 지난해 잠수함사건 이후에는 ‘군량미 전용’ 운운하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이 가세하고 있다. 군량미 전용 가능성과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점, 결국 김정일정권을 연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북한동포는 어떻게 되나.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건져야 하는게 아닌가.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도왔고 베트남 보트피플을 받았으면서 동포인데. 누구든 도와야 할 게 아닌가.

정부가 인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 언론도 ‘딴지걸기’를 그만두고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

6-7월 대기근이 곧이다. 시간이 없다. 주부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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