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전혀 자료가 없는 동시통역은 깜깜한 밤중에 처음 가보는 산길을 운전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고 또 동시통역사를 골탕먹이는‘킬러’연사의 유형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사전에 전혀 자료가 없는 동시통역은 깜깜한 밤중에 처음 가보는 산길을 운전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고 또 동시통역사를 골탕 먹이는 ‘킬러’연사의 유형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동시통역은 기본적으로 2인1팀이 되어 일을 분담하고 서로 긴밀히 협력하여 팀웍으로 일하는데 연사를 다룰때 홍콩, 스리랑카, 인도, 파키스탄의 연사는 정말 ‘노땡큐’다. 영어는 영어인데 발음과 문장이 그 지역의 ‘신토불이’식이라, 심할 경우에는 통역을 하다말고 “지금 저사람 영어로 말하는거야?”라고 통역사들끼리 묻기도 한다.

또 미국말(American)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고풍스러운 정통 영국영어의 문장표현은 한참 머리를 피곤하게 한다. 왜 그렇게 우아하게 비비꼬고 간접적으로 멋을 내야하는지! 그들의 꽈배기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우리말로 바꾸고, 명확하게 전달 하느라고 집중하고 나면 평소의 ‘부드럽고 매력있는’ 인간성은 온데간데 없고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모난 인간이 되고만다. 게다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보면 폐회가 원래의 예정보다 단 5분만 늦어져도 짜증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수년전에 법률전문가들의 학술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유난히 좁은 통역실의 작업환경 때문에 통역팀의 신경이 있는대로 피로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회의의 사회자는 일정을 지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마구 진행이 늦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뒤 늦게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을때, 막 통역을 끝낸 동료통역사가 “법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도무지 시간관념이 없어!”라며 불만을 뱉었는데,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필자는 학회장을 맡고 계신 원로 법학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드릴수 밖에 없었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 할 지도 모른다”고 법률 전문가답게 윽박을 지르더니, 회의가 잘 끝나자 유야무야 풀어져서 무난히 넘어갔다. 힘든 작업 틈틈이 마이크를 꺼놓고 회의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마음껏 품평하면서 작업의 스트레스를 푸는 통역사들. 안 듣는 곳에서는 임금님 욕도 한다지 않았는가. 다만 악마가 장난을 친듯이 가끔 마이크가 켜져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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