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랑연극상 수상한 연극인 김성녀
이해랑연극상 수상한 연극인 김성녀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04.16 11:01
  • 수정 2010-04-16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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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마당놀이·뮤지컬 모두 소화하는 ‘타고난 배우’
남편인 연출가 손진책씨도 이해랑연극상 수상 이력
‘열린 음악회’에 딸과 함께 출연…‘여성신문’과 첫 인연

 

“극장의 매캐한 먼지 냄새가 고향 냄새 같다”는 김성녀씨. 4세 때부터 무대에 섰던 그는 “올해를 끝으로 마당놀이를 접고 젊은 연출가들과 좋은 작품을 골라 ‘깊게’ 들어가고 싶다”며 웃었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극장의 매캐한 먼지 냄새가 고향 냄새 같다”는 김성녀씨. 4세 때부터 무대에 섰던 그는 “올해를 끝으로 마당놀이를 접고 젊은 연출가들과 좋은 작품을 골라 ‘깊게’ 들어가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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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초보 배우처럼 떨립니다. (여성국극 배우였던)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대에 올랐고 극장 먼지 속에서 살아왔는데… 엄마 노릇 못해 외롭게 자란 우리 아들딸, 설거지 안 하게 밖으로 내쫓고 병풍이 돼준 시집 식구들 고맙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 3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선 제20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김성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해랑연극재단이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현대연극사의 거목 고 이해랑 선생의 리얼리즘 연극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심사위원회는 “김씨는 1976년 연극 ‘한네의 승천’ 이후 30여 년 동안 연극·마당놀이·뮤지컬에서 다양한 재능을 무대에 용해시켰다”며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에서 보여준 연기는 독보적”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에 앞서 9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내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여성신문’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여성신문’ 창간 초기 이계경 초대 발행인 겸 사장으로부터 “여성문화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고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진행된 ‘열린음악회’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그때 딸(지원 양)과 함께 ‘플란다스의 개’를 불렀어요. 관객들의 호응이 높아 나중에 KBS ‘열린음악회’가 나온 거죠.”

“마당놀이하며 외로웠는데 에너지 얻었다”

김씨는 “지난 연말 ‘마당놀이 이춘풍 난봉기’ 무대에서 팔이 부러져 무통주사를 맞고 깁스한 채 열흘간 공연했다”며 “이 상을 주시려고 날 넘어뜨렸구나 싶다”고 말했다.

공연 중 다친 게 이번이 두 번째다. 번역극 ‘위험한 관계’에 출연했을 당시 마지막 날 늑골에 금이 가는 부상을 겪었다. “호흡을 못해 큰소리를 못 냈는데 다행히 프랑스 상류층인 백작부인 역이라 대사를 작게 해도 됐어요.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같이 출연한 배우들이 막 울던 기억이 나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네요.

“공연 마지막 날 아침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다쳤어요. 참 우스운 게 그때 ‘욕탕의 여인들’ ‘위험한 관계’ ‘죽음과 소녀’를 연달아 공연했거든요. 작품명대로 가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어요(웃음).”

분장실에서 링거를 꽂고 준비한 ‘죽음과 소녀’는 평론가들의 혹평에 시달렸다. 재공연에선 김성녀란 이름을 걸고 열심히 준비해 아리엘 돌프만 작가가 “전 세계 공연작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만족스러워 했다.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장 겸 국악대학장인 김씨는 “요즘 일주일에 3곳을 돌아다니며 유랑생활을 한다”며 웃었다. 경기 안성 소재 중앙대 교수회관 원룸에서 사나흘쯤 머물고, 극단 미추가 터를 잡고 있는 경기 양주 백석읍에 있는 살림집, 자녀들이 있는 서울 혜화동을 오고간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안성에 있다가 서울 ‘찍고’, 중앙대 관현악과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1인 다역이라 바쁘시겠네요.

“그래도 TV 드라마와 방송을 안 하니까, 제가 바쁘게 사는 건 문화예술계만 알지요. 예전에 저를 좋아한 할머니들은 ‘밥이나 먹고 사느냐’고 물어요.”

김씨는 ‘전원일기’의 금동이 생모, ‘지금 평양에선’의 최은희, ‘토지’의 홍씨부인 역으로 출연했다. 특히 ‘토지’에선 서희의 재산을 가로채는 탐욕스런 조준구 부인 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돌반지를 팔아 쌀을 살 만큼” 가난했던 시절, 그녀의 방송 출연은 가족의 고정 수입원이었다.

“난 모든 게 늦깎이… 49세에 중앙대 교수 돼”

-단국대 국악과 85학번이시죠.

“전 모든 게 늦깎이예요. 국립극단도 늦게 들어갔고. 애들 다 낳고 35세 때 국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국립극단 후배가 교양과목 출석을 부르며 ‘체육복 왜 안 입고 왔느냐’고 야단치다 제 얼굴 보곤 놀란 일도 있어요.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더군요(웃음).”

중앙대에서 음악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성균관대 객원교수를 거쳐 중앙대 국악과 전임교수가 된 것이 49세 때다.

-‘무서운 교수님’으로 유명하시던데요.

“늦깎이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래도 공부할 때 봐주면 남는 게 없으니까…. 나이 먹은 학생들은 안 봐주죠. ‘며느리가 더 시어머니 노릇한다’고 그래요(웃음).”

“전 계보가 없어요”라던 김씨는 “어떻게 보면 외롭고, 어떻게 보면 자유롭다. 선배가 끌어준 적도 없고, 동기 동창도 없이 뭐든지 혼자 한다”며 웃었다.

김씨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고(故) 박옥진씨는 국극의 프리마돈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최초로 ‘춘향전’을 영화화한 고(故) 김향 선생이다. 여동생 성애씨와 성아씨는 각각 판소리 명창과 해금 연주자(한양대 교수)이고 남동생 성일씨는 안무가 겸 뮤지컬 배우다. 엄마와 함께 무대에 처음 선 것이 4세 때다. “엄마 뱃속에서 태교할 때부터 무대예술로 갈 준비가 돼 있던” 그녀에게 무대는 놀이터였다. 잠에 빠져 못 일어나면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줬다. 그러면 눈 비비며 벌떡 일어나서 무대에서 춤추고 악사들이 반주를 잘못 맞추면 무대 끄트머리에서 바닥을 톡톡 치며 틀린 박자를 지적해 ‘여우’라는 별명도 얻었다.

김씨는 “극장의 매캐한 먼지 냄새가 고향 냄새 같다”며 “무대에 서면 고기가 물 만난 듯 자유롭다”고 했다. 천생 재인이라 20대 때도 “어떻게 신인이 발이 무대에 붙느냐”는 평을 들었다. 가까이서 보기보단 무대에서 봐야 예쁘다고 해서 ‘100m 미인’으로 통했단다.

“엄마가 아파 쓰러지는 바람에 대학에 못 갔어요. 한동안 헤매다가 동생이 노래를 같이 하자고 해서 비둘기 자매를 결성했어요. 엄마가 알려준 민요를 뽑아 음반 내고 가수생활을 한두 해 했어요.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사냥을 나간다∼’ 까투리 사냥을 불렀는데, 전통민요곡은 우리가 처음 불렀어요.”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정부의 꿩 사냥 금지령 유탄을 맞아 심의에서 금지곡으로 묶였다. 김씨는 “농부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매고 방송에 나왔다”며 “펄시스터즈나 바니걸즈 같은 유명 자매 가수는 의상이 멋있는데 우린 촌스러운 자매로 유명했다”며 웃었다.



8남매 장남과 결혼 “용광로 들락거리며 단련”

팬들에겐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로 유명하지만, 김씨는 원래 정극으로 출발했다. 데뷔작이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 남편 손진책씨와는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과 연출가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이듬해 결혼했다.

손씨는 8남매의 맏아들이다. 바로 위 시누이는 손봉숙 전 국회의원. 대학교수, 박사가 수두룩한 집안에 고교 출신 ‘딴따라’ 배우가 며느리로 들어왔으니 고생은 뻔한 일이었다. “용광로에 수십 번 들락거리며 성격이 둥글둥글 단련됐어요.” 하지만 그녀가 모신 시어머니 입장에서야 “내가 며느리까지 길러야 하나”라는 푸념이 나오는 게 세상사 이치일 터다.

김씨는 “손진책씨는 나를 강력하게 밀어주는 ‘백’이고 ‘병풍’”이라고 했다.

-‘엄마 점수’는 몇 점일까요.

“F를 겨우 면한 D학점 정도?”

한참 웃던 김씨에게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평해달라고 했다. “손진책씨의 아내로선 B학점은 돼요. 살림은 제대로 못하지만 연극 동지로 도움이 됐을 테니까요.”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중 부부의 동반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씨는 13회 수상자다. 김씨는 “번역극만 하면 상을 줘서 한 같은 게 있지만 정통 연극인들이 인정하는 상을 타니까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했다. “20년 동안 후보에 올랐다고 해요. 남편이 상을 받으면서 ‘김성녀와 같이 타는 상’이라고 했어요. 다들 늦게 탔다고 하지만 못 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너스로 상금 받은 느낌이에요.”

김씨는 “정통연극은 서양 리얼리즘 연극인데 우리 부부는 전통연희에 바탕을 둔 한국적 연극 형식을 만든 선두주자로 외롭게 길을 걸어왔다”며 “힘들게 대접도 못 받으면서 ‘지킴이’로 살아왔는데 앞으로 열심히 활동할 에너지를 주셨다”고 했다.

김씨는 이해랑 선생과 작업한 마지막 세대다. “손숙 언니와 윤소정 언니, 김금지 선배와 박정자 선배와 6∼10년 터울이에요. 후배들은 이해랑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못 했어요. 전 ‘삭풍의 계절’로 처음 작품을 함께 했어요. 젊은 며느리 역이었는데 대사할 때 같이 호흡하시던 기억이 또렷해요. 그분의 훈김이 씌워져 모르는 분이 주는 상보다 가깝게 느껴져요.”

“마당놀이 30주년 공연 후 젊은 연출가들과 작업”

김씨는 연극인 겸 국악운동가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손진책 연출가와 배우 윤문식씨와 함께 ‘마당놀이 트리오’로 유명하다. 김씨는 “윤문식씨는 30년 지기인데 간혹 부부로 오해하는 팬들도 있다”며 웃었다. 김씨는 올해를 끝으로 마당놀이를 접고 젊은 연출가들과 작업할 계획이다.

김씨는 9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벽속의 요정’ 여섯 번째 공연을 마친 후 마당놀이 30주년 공연 연습에 들어가 11월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후 연출가들이 많이 전화했어요. ‘손진책씨하고 그만해라. 뉘 나지도(싫증나다, 지겹다) 않냐’ 더군요. 마당놀이는 후배들에게 넘기고 좋은 작품을 골라 깊게 들어가고 싶어요.”

1남1녀를 둔 김씨는 제대로 엄마 노릇을 못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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