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가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꿈”
미국에 가족 두고 귀국…230명 장애인과 동고동락

 

1952년 피란민과 전쟁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가득했던 거제도에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는 애광원이 세워졌다. 애광원 설립자인 김임순 원장의 친딸인 송우정(59·사진) 이사는 원장님이 친어머니인 줄 모른 채 고아들과 함께 자랐다.

“원장님께서 생후 일주일도 안 된 신생아 7명을 보살피시면서 애광원을 시작하셨는데 그 중 두 명이 굉장히 약했답니다. 그래서 제게 먹이던 모유를 그 아기들에게 먹이시며 키우셨다고 해요.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셨기 때문에 원장님이 제 어머니인지 늘 애매모호했습니다. 지나고 돌아보니 그렇게 키우신 게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애광원 언니 오빠들과 부산에 나가 공부한 송 이사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부름으로 애광원에서 1년간 일했다.

“원장님이 애광원에서 자랐으니 1년은 무조건 무보수로 봉사하라고 하셔서 1년간 일했습니다. 그 후 1년은 회사 생활을 하다가 혼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어머니를 도우라며 만류했지만 어머니께서는 큰 세상을 보고 오라는 말씀만 하셨어요.”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송 이사는 애광원의 부름을 받고 지난해 9월 애광원의 상임이사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에 남편과 딸 둘을 남겨두고 혼자 귀국했다.

“남편과도 많이 의논했어요. 이제까지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앞으로는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나를 키워준 애광원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어머니께서 원장이어서 오지 않겠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습니다.”

애광원은 1952년 애광영아원으로 설립, 1978년 지적장애인 시설로 전환됐다. 현재 230여명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는 애광원은 지적장애인 재활, 특수교육, 중증장애인 요양, 영유아 보육,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설치 운영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7살부터 56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식구들이 함께하고 있지만 입소는 13세 미만의 지적장애인만 가능하다.

“장애우들이 사회로 진입하거나 사회와 조화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만 보면 제자리걸음인 듯하지만,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돌아보면 느리지만 많이 변화한 걸 볼 수 있습니다.”

송 이사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사람으로 인정받고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꿈”이라고 말하며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많은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틀에 사람을 집어넣으면 그 안에서만 판단하지 그 틀을 깨지 못합니다. 오히려 장애인들 눈에는 우리가 훨씬 더 많은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덧붙여 그는 장애인을 위한 제도적·정책적 겉치레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인 프로그램 개발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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